<스토너>를 읽다

우리들의 사는 모습

by 전지은


어떤 책일까 사뭇 궁금했다. 책 표지에 나와있는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라는 구절 때문에. 너도 나도 스토너인 세상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 처음은 조금 지루하게 시작되었지만 책은 점점 빠르게 읽혔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스토너 인생의 주안점인 학문적 탐구는 소설 전체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골고루 담겨 있다. 그 메인의 줄거리 안에 보통사람들이 갖는 현실의 결혼 생활, 무심하다 못해 우울증이나 조현증 같은 아내의 모습을 밀어내지 않고 견디는 주인공. 제자와 사랑에 빠지면서도 학문적인 탐구가 그들 관계의 초점이 되고, ‘대학은 소외된 자, 불구가 된 자들이 세상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라는 그 교정. 그 안에서 삐딱한 제자와 학장과의 갈등도 이어진다. 농사만 짓다가 죽은 아버지과 소도시의 은행장으로 부정 축재를 했던 장인의 자살. 딸 그레이스와의 문제 등 생기며 보통 사람들이 겪는 삶의 모습들에 당면한다.


연구와 교육으로 자신이 직면한 문제들을 피해 가려해 보지만 충분한 방패는 되지 못한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자잘한 것들은 교수나 박사라고 예외 되지는 않는다.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나 존재하는 걸림돌들이 이어지고 주인공의 발목을 잡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최선을 다하는 스토너. 대학에 이런 교수만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라는 생각이 언듯 스쳐 지나간다.

교정이라는 울타리, 대학이라는, 박사라는, 교수라는 타이틀이 줄 수 있는 허용의 한계도 어느 사회와 비슷하다. 스토너는 그 제한적인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르쳤다. 사랑조차도 그 안에서 이루어졌고, 연인이었던 제자 캐터린은 홀연히 떠난다. 불륜관계에 있을 때 가정은 더 평화롭게 그려진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일지 모르나,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읽고 난 후라서 불륜, 이라는 사랑은 소설에서는 동서양이나 옛날과 현대를 막론하고 꼭 들어가 주어야 하는 한 토막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의 쫄깃함이 오래 남아있다.

주인공은 교정 안에서 권모술수나 타협을 멀리 한 채 자신이 가고자 했던 ‘중세 문학’ '중세영어, 운문과 산문’에 최선을 다한다. 주인공의 평생 동안 놓지 않았던 ‘중세문학‘. 영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주인공의 열정에 박수를 본 낸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한곳에 집중했던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주인공 스토너. 그도 60이 넘고 정년을 바라보며 죽음의 시간이 바로 눈앞에 와 있음을 알게 된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주인공 스토너. 책의 마지막 장에 서술되어 있는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는 이렇게 평안할 수 있을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주인공의 모습은 한 생애에 최선을 다해 살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평화로움 아닐까 싶다.

책 전체에 깔려 있던 스토너가 자신의 인생 안에서 만나는 사건들 사이사이에서 만났던 문학적 표현도 많이 공감이 갔다. 비유와 은유 안에서 고운 색깔의 유화를 만난다.

나도 퇴직을 했다. 41년의 직장 생활. 그것도 죽음 앞의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던 시간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만났던 환자들에게 얼마나 진심이었고 얼마나 최선을 다했던가. 사람을 대하는 일이었기에 최선을 다 한다고 했지만 버거울 때도 있었고, 신은 과연 있는지? 갈등의 시간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기는 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주인공은 책을 읽으며 죽어간다. 책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끼며,’ 손가락에 힘이 빠지며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그의 마지막 시간)… 방의 침묵 속으로(죽음의 확인)으로 끝을 맺는다.

17장은 두어 번 다시 읽었다. 나의 모습이 반영되며 흔들린다. 누구도 죽지 않는 인생은 없다. 그 마지막의 시간까지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던 주인공.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학장이나 주임이 되지도 못했고, 연구업적이 세상을 바꾸어 놓지도 못했다. 불같은 사랑을 옆에 잡아 두지도 못했다. 무미한 아내와 가정과 그 안에서 사생아를 낳은 딸이 있을 뿐이다. 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던 한 대학교수의 생애를 통해, 사람 사는 일은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 인생이 결코 헛되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보통 평범한 한 시민, 그 평범이 모여 이 세상을 이룰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좋은 소설.


“나는 과연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냐”는 질문에 ‘사는 일은 참 해 볼 만한 일이다’라는 말로 현문우답을 하고 만다. 당신의 시선에서 스토너의 인생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란 질문을 오랜 여운으로 가슴에 담으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저자 존 위리엄스는 내가 사는 곳의 이웃인, 덴버 대학에서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쳤고, 4편의 소설과 2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스토너>가 출간되고 50년이 지난 후에야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