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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an 17. 2022

2년만에 본 뮤지컬, 스톰프(STOMP)

두드리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며 제한적인 일들이 많아졌다. 그중 하나가 공연 관람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관람을 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두해나 걸렀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 물리적인 현상에 의해 못하게 되자, 더 기다려졌다. 그러다 우리 동네는 몇 주전 이번 시즌부터 다시 재게되었다. 미국도 도시마다 상황이 달라, 아직 공연 재개를 못한 곳도 있다고 하고, 뉴욕에서는 백신 증명을 반드시 지참하되, 공연 14일 전에 접종을 한 것만 인정을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코로나 사태가 좋아진 것도 아니고 델타에 이어 오미크론까지 더하며 감염자의 숫자는 엄청나, 다시 모든 것들의 봉쇄령을 내려야 할 것 같은 상황임에도 공연을 재게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공연을 해야 살 수 있는 배우와 공연극장의 당면한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을 수도 있고, 거의 2년을 똑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느끼는 방법이 조금 무디어졌을 수도 있다.  코로나라는 복병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 아니고 보면, ‘함께 사는 방법’을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공연 재게는 반가웠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가능하면 피해야 한다는, 보편적인 원리 앞에서는 조금 망설여 지기는 했다. 그러나 2년 전 시즌을 시작하며 구매해 두었던 티켓들이 올 시즌으로 순연되었다는 이멜을 받고 보니, 당연히 관람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스크는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문구가 아니더라도, 이중으로 마스크를 쓰고 장갑도 끼고, 나름 완전 무장을 하고 공연을 보러 갔다.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에 당혹스러웠고, 거리 두기의 상실에 조금 겁도 났다.


그래도 이왕에 왔으니 즐기자, 마음을 먹었다.



<구글에서 가져온 스톰프 프로그램 사진>




“스톰프 Stomp”. 일반 뮤지컬들과는 다르게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박자와 비트를 이용하는 공연이다. 첫 장면은 막대 빗자루로 비트를 맞춘다. 8명의 배우들은 발을 구르기도 하고 막대를 이용해 리듬을 맞주기도 한다. 간간히 추임새의 소리를 내는 건, 음향효과를 키우기 위한 일이고.


손바닥을 치거나 허벅지를 때려 리듬을 맞추는 것, 성냥갑을 이용한 리듬. 드럼통을 두드리는 경쾌하고도 숙련된 일정한 리듬 속으로 빠져 든다. 막힌 화장실을 뚫는 뚫어 뻥도 등장하고, 소리가 나는 모든 것은 공연의 도구가 되어 해학적으로 풀이되며 리듬을 맞춘다. 급기야는 쓰레기통을 두드리고 신문지를 말아서 두드리며 소리를 내기도 한다.


스톰프는 1994년 뉴욕에서 개막한 난타 공연이다. 영국의 길거리 공연에서 시작된, 소외받은 청년이 한두 명씩 청소 도구나 비닐, 신문지 등 일상에서 쓰이는 도구를 사용하여 만든 소리로 리듬을 만들며 자신들의 즐거움을 찾는 내용이다. 프로그램에서는 눈으로 보는 코미디라며 에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는 설명도 곁드렸다.


그 옛날 정동의 난타 공연장에서 보았던 난타의 기억이 새롭다. 쿠킹 난타에선 모든 조리 기구들을 이용해 리듬을 맞추었고. 오이와 양배추를 썰고, 도마 위에서 각종 야채를 썰며 칼 리듬을  맞추었었는데, 말을 하지 않아도 배우들의 동작과 리듬을 통해 이야기 전개를 알 수 있었던 해학적인 공연이었다. 비언어적 포버먼스이지만 칼 리듬의 박자와 비트로 전할 수 있는 이야기는 꽤 많았다.  그때도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많이 웃었었는데.






어릴 적, 친정 툇마루 끝에는 다듬이가 있었다. 옥양목 이불을 빠는 날엔 외할머니는 종일 다듬이 방망이질을 하셨다. 다린 것 보다 훨씬 잘 펴진, 뽀얗게 다듬어진 옥양목 이불깃과 베갯잇 사이로 지나가던 경쾌한 리듬.  어느 핸가 한국을 방문하며, ‘추억의 거리 인가’를 방문했고 그곳에서 발견한 다듬이를 신나게 두드렸던 기억도 소환되었다.


기억 속의 즐거움과 웃음, 시끄러운 비트의 리듬 속으로 빠져들며 속이 좀 후련해졌다. 장갑을 낀 손으로 박수를 치기도 하고 마스크를 쓴 채 소리 내어 웃기도 하였다. 리듬 속에서 마음속의 우울을 걷어 내고 신나는 비트에 마음을 맡겨본다. 공연을 통해 마음은 좀 후련해졌다.


일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것들이 소품이 되었던 공연. 내 삶의 어느 부분도 '두드림'의 한 부분이 되어 공연을 펼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커다란 양철 쓰레기 통에 코로나를, 야드 청소용 브라운 플라스틱 통에 델타 변이를, 차고에 둔 허드렛거리를 넣어두는 오렌지색 통에 오미크론을 넣는다. 두드린다. 비트에 맞추어 세게 두드린다. 주문을 외우며 더 세게 두드린다. 추임새도 넣는다. "물러가라, 물러가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없어져라, 없어져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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