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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an 21. 2022

풋볼, 그 매력에 빠지다 1

              


미국 생활 30여 년이 지나도록 풋볼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그 옛날, 유학생 가족의 생활을 시작하며 남편이 공부하던 대학의 캠퍼스를 종종 찾아갔었다. 교정의 정중앙 너른 잔디밭에서 젊은 친구들이 간혹 볼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럭비공 같이 생긴 것을 던지며 주고받는 모습. 풋풋한 젊음이 함께 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보기 좋았다. 그렇지만 당시 어린 주부의 마음엔 스포츠에 시선을 줄 만한 여유가 없었고, 그냥 그런 젊은이들의 공놀이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 풍경이 다시 생각났던 건, 한 십여 년 전이다. 남편과 아들이 주류사업을 시작하였고, 난 퇴근 후나 쉬는 시간이 생기면 가게에서 쓸고 닦는 일을 주로 거들었다. 매장에는 커다란 티브이를 늘 틀어 놓고 있었는데, 술을 사러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티브는 틀어져 있었다.


유독 많은 손님들이 풋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선반을 닦다 말고, 술병의 먼지를 털다 말고 손님과 하는 대화에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영 알 수도 없었고 대화를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종업원들이 나를 대신해 대화를 이어 갔다. 이 선수는 이 술을 좋아했고, 저 선수는 플레이 오프 후 이 술로 건배를 했고, 오늘의 경기 중에는 어느 선수가 잘 던졌고, 누가 잘 못 받아서 게임을 망쳤다는 등의 이야기를 옆에서 귀동냥을 해야 했다.



<2018년 겨울 브롱코 게임을 관람하며>

               

               

가을, 풋볼 시즌을 시작할 때쯤 풋볼에 대한 공부를 했다. 순전히 고객관리 차원이었고 알아야 면장을 있을 같아서. 그래야 대화를 이어갈 있고 매장에 조금이라도 잡아 두어야 손님이 한병이라도 것이니까. 구글에서 풋볼의 규정을 찾아 읽어 보고, 유튜브에서 기본적인 룰을 설명하는 것을 찾아서 보았다. 한 30분 투자했을까? 그리고 우리 동네인 콜로라도주 덴버에 속해 있는 브롱코 Broncos팀을 관심 있게 보기 시작했다.


길이가 총 100 야드(91.44m)인 경기 장에서 자기편 쪽에서 시작해 상대방쪽으로 전진하며 마지막 라인인 엔드 존(End Zone)에 도달하면 득점을 하는 방식이다. 많은 이들이 풋볼을 땅따먹기 방식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난 그 말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브롱코 게임을 몇 번 보면서 유튜브 설명과 비교해가며 시청했더니, 아 ~하 이거구나 하는 순간이 왔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공을 멀리 던지는 패싱(Passing)과 공을 가볍게 토스(Toss) 해주고, 그 공을 받은 선수가 들고뛰는 러닝(Running)의 두 방법으로 득점을 하게 된다. 공격팀은 4번의 기회 안에 최소한 10 야드를 전진해야만 그다음 4번의 기회가 또 주어진다. 수비들의 격렬한 제지를 뚫고 앤드 존까지 갔을 때는 6점. 거기에 킥(kick)을 하면 1점을 보태어 7점이 된다. 점수를 좀 더 벌어야 되는 상황에서는 다시 한번 공을 앤드 존으로 던질 수 있고, 받으면 2점이 합해진다. 그렇게 득점을 하게 되면 상대 쪽으로 킥오프(kickoff)를 통해 공이 넘어가게 되고 상대방의 공격이 시작된다. 15분씩 4 쿼터로 게임을 하고 2 쿼터가 끝나면 하프타임 (Halftime)을 갖는다. 정규시간은 1시간 조금 넘지만 파울이나 타임아웃 같은 것들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 보통의 게임은 3시간 정도 걸린다. 3시간 동안 티브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선수들이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소리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거나 아쉬움으로 한숨을 깊이 내 쉬거나 하면서 경기를 함께 한다.


수비수 11명, 상대방인  공격수 11명의 선수가 필트에서 뛰지만 각 팀의 수비와 공격수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각 팀은 최소한 22명의 선수가 필요하고 거기에 필드 킥(Field Kick)이나 펀트(Punt)를 하는 스페셜  팀 선수도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선수들이 있어야만 팀을 이룰 수 있다. 미국의 프로 팀에서는 한 팀 당 53명의 선수를 구성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공격을 하는 팀에서는 공을 던지는 쿼터백(Quarterback)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멀리, 그러나 정확하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쿼터백이 던진 공을 받는 와이드 리시버(Wide Receiver)와 짧게 토스 해준 공을 받아 들고 달리는 러닝백(Running Back)이 역할을 제대로 해야 그 팀은 승산이 있게 된다. 쿼터백은 야구에서 투수와 같은 역할이고 축구에서는 주장인 셈이다.


기본을 숙지하게 되자 게임은 엄청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게임의 진행 속도가 야구의 서너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축구와 비슷한 속도감이긴 하지만 풋볼은 말 그대로 온몸으로 경기를 한다.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지하고(물론 반칙인 경우도 많지만), 발로 뛰는 경기. 그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매사에 열정적인 내 성향과 꼭 맞았다고 하면 남들은 웃겠지만, 사실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온몸으로 뛰는 경기. 매상을 올리기 위해 힘껏 공을 던지는 아들의 역할과 자리에서 공을 받아 주는 남편과, 토스받은 공을 들고 상대방의 제지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앤드 존까지 달려가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 이후, 브롱코가 경기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티브이 앞에 서서, 술을 사러 왔던 손님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지르며 경기를 관람했다. 내가 응원하는 동네 팀, 브롱코가 이기면 좋고, 또 지면 지는 대로, 게임을 뒤돌아 보며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했었어야지’하며 코치라도 된 듯 열을 올린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한국 아줌마 중에 풋볼에 저렇게 열광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보다 더 게임 룰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진짜 게임을 즐기는 찐 팬이야 ㅎㅎㅎ"


가게에서 손님들과 게임을 같이 보며 나누는 대화는 말 그대로 재밌다. 심각한 종교 얘기도 아니고 편가르기를 하는 정치얘기는 더욱 아니다. 함께 티브이를 보면서 가끔 오버 액숀을 섞어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그 친근감은 배가 된다. 흥겹게 게임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 손님은, 돈을 쓰는 고객이라기 보다는 이웃같고, 서로 이름을 부르는 친밀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단골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손님을 고객우대의 시선에서 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인간적인 관계 형성이 되어야 단골이 늘어 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관계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 풋볼에 관한 이야기꺼리 였고, 동네 팀을 함께 응원하는 '우리'가 될 수 있는 일이 었다.


미국 종업원들도, 술을 사러 온 손님들도 아들의 말에 동감한다. 언제부터 풋볼을 즐겼느냐고? 고백하건대, 게임이 있는 날의 매상은 평소 주말의 매상보다 배 이상 올라감으로… 고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장사를 해보니 훨씬 편하고, 매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더라고.


다음날, 병원에 출근을 하여 동료들과 어제의 게임을 이야기하면 미국 동료가 그렇게 말했다. “한국에서도 풋볼 하니? 혹 가족 중에 누가 선수야? 어찌 그리 잘 아니?”하며. 종일 전날 게임이 대화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브롱코의 대표 선수이자, 쿼터백인 페이튼 매닝(Peyton Manning)은 몇 살이니? 몇 년이나 선수 생활을 했어? 어느 팀에서 이적되어 왔니? 왜 이적되었는데? 어머~ 너무 비싸다 등등 끝도 없이 수다가 이어진다.

스포츠에 관한 이야기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대화의 매체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응원하던 팀이 졌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겼으면 잠시 기분이 업 되는 순기능도 동반한다.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이웃들과 잘 지내는 매체로 계절 마다 다른 스포츠 이야기를 한다면 대화의 공동분모로 충분한 역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게임 다음날의  점심시간은 아쉬웠다. 많은 수다를 이어갈 있는데…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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