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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Jan 26. 2022

지난 2년, 코로나19가 남긴 것

콜로라도 이방인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한잔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어김없이 뉴스를 살핀다. 


한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하루 만에 5천 명이 증폭해 1만 300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걷잡을 수 없는 범 전국적인 확산 세이다. 다음 주가 설 연휴이니 그 증폭의 속도는 가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이다. 난 언제 다시 한국을 갈 수 있을까. 


지난 2년간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한국을 세 번 찾았다. 두 번의 자가격리를 했고, 다행히 세 번째 방문에는 직계가족 유예 조항을 따라 격리를 면했지만 이어지는 검사에 또 검사,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을 가야 했던 이유의 영순위는 노모가 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이었다.  


면회조차도 자유롭지 못했지만,  가까이서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드리고 싶다는 내 욕심은 그냥, 욕심이었을 뿐이었다. 비대면 면회라는 것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스크를 끼고 소리소리 지르는 일이었다. 엄마의 식사 시중 한번 들 수 없었던 안타까움은 그래도 같은 동네의 하늘 아래, 부르면 20분 이내에 달려갈 수 있다는 것에 위로를 삼으며 지냈었다. 





이곳의 상황은 더 나아졌을까, 미국 뉴스를 클릭한다. 


여기도 우울한 소식은 마찬가지이다. 일일 환진자가 75만 명을 넘었다는 것이 엊그제 같은데 100만을 돌파했다.  오늘 아침의 정확한 숫자는 1,029,906이다. 일십백천만…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아,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어봤다. 정말 백만이 넘었구나. 


뉴스를 전하는 앵커는 담담하게 상황을 전하고, 이어 각 가정으로 배달된다는 진단 키트와 마스크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진단 키트는 웹사이트에서 신청하면 각 가정당 4개를 보내준다고 하고, 마스크는 신청 유무에 상관없이 우편물 함에 넣어 준다고 한다. 이어서 의료 전문가와의 영상 인터뷰를 통해 백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설파한다.

  

리포터는 거리에서 만나는 일반인들과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이는 "오미크론은 2차를 접종하고 추가 접종까지 했는데도 걸린다고 들었다. 추가접종을 하고 걸리나, 안 하고 걸리나 마찬가지 아니냐"라고 말한다. 그리고 리포터는 백신을 맞으면 좋겠지만 안 맞는 것조차도 그들의 선택이다라는 마무리 멘트를 남겼다. 


평생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황들이 길어지며 보통의 시민들도 그 피로감에 많이 지치고 무디어졌다.  처음 코로나19라는 상황을 접했을 때는 매일 뉴스 브리핑을 하고, 병원 가동률과 사망자의 숫자를 보도하며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그러나 요즘 주위의 반응들은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식이다.


<대부분의 빌딩 입구에 부착되어 있었던 이미지. 이젠 거의 볼 수 없다>



작년 11월, 한국에서 돌아온 직후 이곳 콜로라도 주에서는 주정부 차원에서 모든 공공장소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그러나 오미크론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연말부터는 마스크 착용은 옵션이라고 바꾸었다. 나를 보호하고 혹,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감염이 되어 있어 누구에게라도 옮길까 싶어, 마스트를 써야 한다고 강조는 하지만 개인보호법에 의해 강제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이곳 미국의 대세이다.

 

남편과 아들이 주류사업을 하다 보니, 나도 거의 매일 가게를 나가서 돕는다.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술병 하나라도 먼지를 털고, 쓸고 닦고, 손님에게 웃으면서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는 것 정도. 가게에 있는 동안에는 철저하게 마스크를 쓰고, 자주 손을 닦고, 손세정제를 사용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기침을 조금만 해도, 콧물이 조금만 흘러도 '혹시?'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지금은 손님들의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한다. 처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 마스크 쓰기를 권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마스크는 중병에 걸린 사람들만 쓰는, 무슨 몹쓸 물건 정도로 취급했다. 하지만 이젠 공공장소에서도 마스크를 자연스럽게 쓰는 것 정도가 되었다면, 2여 년이란 시간 동안 전연병이 준 학습효과일까. 


그런가 하면 지난가을부터 시작된 많은 관중을 동원한 풋볼 장에서는 그 많은 인파 중에  마스크 착용을 한 사람이 거의 없다. 게임을 응원하면서 소리 지르고 손뼉 치고 비말은 공기 중에 둥둥 떠 다닐 텐데도 말이다. 물론 풋볼 경기장은 야외여서 감염의 위험이 덜 한다고 하더라고, 거리두기는 아예 실종된 상황이고 보면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다.



제롤드 콜로라도 주지사가 주민 모두가 마스크 쓸 것을 권고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이미지



요즈음 미국에서 체감하는 코로나19에 대한 느낌은 확실히 ‘위드 코로나 With Corona’로 접어들었다. 걸리면 할 수 없고, 안 걸리면 다행이고 라는 태도다.

 

아직 추가 접종을 하지 않은 종업원들에게 추가 접종을 하면 현금 보너스를 준다고까지 이야기했지만, 젊은 친구들은 백신 맞고 후유증으로 아프나 안 맞고 코로나에 걸려서 아프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주정부 차원에서도 마스크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업원들의 자유 선택 상황을 어쩌지 못하고 계속 권장해 보는 수밖에 없다. 그저 마스크와 손세정제, 장갑을 곳곳에 비치해 두고 누구라도 쓸 수 있게 하는 것뿐. 그들의 자유의사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을까. 자유 의지를 존중해야 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을… 공공의 안녕보다 개인 의사가 더  중요하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예전엔 단골손님이 오면 먼저 다가가 손도 잡고, 포옹도 하고, 쓸데없는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 대화도 이어갔다. 매주 금요일 오후면 와인 시음 시간도 있었다. 와인 공급처에서 가져다주는 대여섯 가지의 와인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치즈와 크래커 같은 핑거 푸드를 놓고 와인을 음미하며 와인의 맛과 향미, 어울리는 음식 등을 이야기했고, 소믈리에 자격을 가진 아들이 와인 산지와 산도 등 성분에 대해 설명을 하면 고객들도 좋아하며 들었던 시간이었다. 와인만 배우고 맛보는 것이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동네의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그것도 사라져 버렸다.


언제쯤 코로나19라는 복병이 사라져, 우리들이 다시 모이고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있을까.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쓰고 하는 대화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음식을 나누는 문화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대화의 단절로 인해 마음마저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단골들이 묻는다. 언제 다시 와인 시음을 시작할 것인지. 아직은 기약이 없다. 친구는 카톡을 보내왔다. 언제쯤 한국에 들어오는지 묻는다. 그것도 아직은 계획을 할 수가 없다. 엄마가 잘 견디고 계셔 주기만을 간절히 기도 할 뿐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며 상황에 무디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만 커지고 관계의 단절은 점점 깊어지는 것은 아닌지… 코로나 블루만 깊어가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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