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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Feb 08. 2022

2022년 슈퍼볼을 기다리며

풋볼, 그 매력에 빠지다. 두 번째 이야기


           



브롱코는 내게 최고의 팀이다. 


지지부진한 성적을 면하지 못하고 몇 해를 보내도 난 찐 팬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응원했다. 내가 사는 주를 대표하는 팀인데 이 정도 응원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이 있는 날이면 브롱코 선수들이 입는 티셔츠와 모자, 장갑까지 챙겨 입고 외출했다. 심지어 성당 주일 미사를 갈 때도 유니폼을 챙겨 입었다.


그러다가 2015년 내셔널 풋볼 리그 50주년이던 해, 브롱코는 갑자기 승승장구했다. 한 시즌 16번의 게임 중 10번을 연속해 이기며 온 동네는 브롱코 이야기에 들떠 있었다. 신나는 게임은 매주 이어지며 가게의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나는 내 응원이 한몫을 했다고 단단히 믿었다. 우리 동네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특별한 선수가 그 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참 컸다. 프로 풋볼 팀 중 가장 수비를 잘하는 선수인 반 밀러 Van Miller는 역량을 제대로 발휘했고, 쿼터백 페이튼 매닝 Peyton Manning은 신기하게도 와일드 리시버의 양손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 정확하게 공을 던졌다. 그가 공을 던지기 전에 외쳤던 구호 “오마하 Omaha”는 동네의 유행어가 되었고, 어떤 일을 빨리 해야 하거나, 정확하게 해야 할 때 ‘오마하’ 하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 시즌이 끝나는 2016년 2월 7일,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서 열렸던 슈퍼볼 게임에서 브롱코는 승리했다.  17년 만의 쾌거였다.  


다음날 덴버 시청을 중심으로 시민들이 몰려 축하를 했고 덴버시가 생긴 이래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 한 시간 이상을 걸어가는 거리에 차를 세우고, 한 겨울의 차가운 날씨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인파는 몰렸고, 축제는 종일 이어졌다.






이후 승리의 공신이었던 페이튼 매닝은 은퇴를 했다. 2016년 가을 시즌부터 새로운 매니저와 새로운 쿼터백을 영입했던 브롱코는 그야말로 사양길을 걸었다.  


풋볼 시즌이 되면 나도 의기소침해졌다. 게임의 재미는 이기는 것에 있다는데 매번 지기만 하는 경기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급기야 올해는 시즌이 끝나기 무섭게 매니저는 사임을 당했고, 새로운 시즌에 뛸 새로운 쿼터백을 뽑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팀 전체를 매각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풍전등화 같다.  한해의 영광은 그렇게 사라졌다. 쿼터백의 은퇴와 함께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인생사 다 그러하듯이 최고에 오르면 그다음은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심기 일전하고 분위기를 쇄신하여 내년에는 더 나은 팀이 될 수 있을까 미리 기대해 본다. 


부진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난 초심처럼 응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 동네를 대표하고 마일 하이, 로키 산맥 위에 자리 잡은 그들의 노력이 그곳에 있음을 잘 알기에. 지고 싶어 하는 선수와 팀이 어디에 있겠는가.  노력을 해도 역부족이었다면, 그들의 노력이라도 인정하고 박수 쳐 주어야 할 일 아닌가. 



<탐 브래디의 모습. 연합뉴스에서 퍼옴>



미국 풋볼은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양대 산맥이 있다. 며칠 전에는 그 양대 산맥의 챔피언쉽을 결정하는 게임이 있었다. 각각 3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게임을 이어서 시청했으니 장장 7시간 정도 TV 앞에 있었다. 내가 응원하는 동네의 팀이 아니라고 해도 맥주도 한잔 마시며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중 한 팀인 아메리칸 리그의 씬시내티 벵갈 Bengals. 1988년 이후 한 번도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늘 끝 순위를 도는 팀이었다. 그러나 대학에서 풋볼을 오래 했던 새로운 쿼터백을 영입한 후 2년이 된 올해. 그들은 시즌 내내 질듯하다간 역전을 하기도 하고, 오버타임에서 이기는 등 좋은 성적을 내더니 드디어 챔피언이 되었다. 


프로 풋볼 팀의 새내기인 조 브로오 Joe Burrow는 경기 내내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챔피언쉽 경기에서 18대 3이라는 숫자로 끌려가던 팀이 하프타임이 지나고 난 직후인 3 쿼터부터 따라 잡기 시작하더니 4 쿼터에는 21대 21이라는 동점을 만들고, 오버타임에서 3점짜리 킥을 성공시켜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거두었다. 34년 만의 쾌거는 한밤중, 도시 전체를 흥분의 축제장으로 만들었다.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민들의 반응을 보며 2015년 덴버 브롱코가 슈퍼볼을 갔을 때의 흥분이 되살아 났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던 기억. 다시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추억.




그런가 하면 미국 풋볼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쿼터백을 했던 탐파베이 Tampa Bay의 브커니어스Buccaneers 팀의 쿼터백인 탐 브래디 Tom Brady의 은퇴 소식도 있다. 최선을 다해 뛰었고 영광의 순간에 함께 했던 그들도, 한 세월이 지나면 뒤쪽으로 물러난다. 물러나는 시간을 아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것처럼, 스스로의 때를 아는 일일 것이다.


풋볼의 재미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결과를 알 수  없고, 예측이 되지 않는 많은 작전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보는 관중들은 시선을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다. 일 야드를 전진하고도 이길 수 있고 볼을 잘 던져도 상대방에서 낚아채면 말짱 허사가 돼버리며 공격권을 빼앗겨 버린다. 그러면서도 공을 단단히 감아쥐고 앤드 존을 향해 뛴다. 중간의 장애물인 상대방의 수비를 요리조리 비껴가면서.


사람 사는 일도 예측되지 않는 부분이 산재한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런저런 작전을 짜는 일은 인생과 너무 닮았다.  인생의 구비구비에서 만났던 삶의 복병들을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맞게 처리하며 지냈던 것처럼, 공을 받아 앤드 존을 행해 뛰는 선수들도,  앤드 존에서 확실하게 공을 받아줄 우리 편 선수도, 공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고 믿고 던지는 쿼터백도, 작전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해마다 풋볼 경기를 봤어도 이번 시즌처럼 재미있었던 적은 없다. 시즌의 끝인 플레이 오프부터 챔피언 쉽까지 거의 모든 경기들이 역전이거나 오버 타임을 해서 이기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들이었다. 


2월의 두 번째 일요일인 13일에 슈퍼볼이 열린다. 시즌의 꽃이며 휘날레인 경기. 캘리포니아 L.A. 홈구장에서 내셔널 리그의 챔피언인 램스 Rams가 뱅갈을 맞아 경기를 한다. 모든 스포츠 채널에서는 램스의 홈구장 이익을 내세워 승리를 점친다. 그러나 난 내심 뱅갈을 응원하고 싶다. 34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팀과 새내기 풋볼 쿼터백의 피나는 노력과 도시 전체의 열정과 합쳐진 마음들. 하나 되는 그들에게 마음으로 힘찬 박수를 보낸다. “뱅갈!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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