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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Feb 18. 2022

'브런치'라는 마술

브런치를 만나며 알게 되는 일상들

               



하루의 시작은 방금 내린 헤이즐넛 향의 커피 한잔과 브런치를 열며 시작된다. 앱의 귀퉁이에 뜨는 숫자에, 오늘은 뭘까 하는 호기심이 커피 향을 타고 퍼진다.  


브런치 앱을 깔고 채 6개월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브런치는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늘 내 곁에 있다. 새벽 이른 잠에서 깨어 아직 졸음이 뚝뚝 떨어지는 시간에, 나른한 오후 심심한 시간에, 자동차 여행을 하면서 옆자리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어김없이 앱을 체크한다.


글을 올리며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출간 작가라고는 하나 본캐는 간호사요 부캐가 글쓰기인 나의 자리. 여기다 글을 올리면 어떤 사람들이 읽을까. 어떤 반응이 올까 두려웠고, 혹 악플이라도 달리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남들은 사진 이미지 위에 글을 더하고,  멋진 글씨체로 매력을 가미하기도 하고, 예쁜 이모티콘이나 삽화를 넣어 놓아 매력을 더하는데,  컴맹 수준인 나는 겨우 글을 올리고, 가끔 퍼온 사진이나 그 옛날 찍어 놓았던 사진들을 겨우 겨우 찾아서 올리는 정도이다. 투박하고 서툰 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는 일이었다. 두려움에 많이 위축되었다. 


지난여름 출간 준비를 시작하며 한국에 돌아갔을 때 브런치를 시작했다. 다행이 많은 독자분들이 좋아해주셨고, 브런치 덕분에 책도 날개를 달아 퍼져나갔다.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겨울, 사는 곳인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은 간호사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또 다른 내 이야기를 쓰는 매거진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콜로라도 이방인]. 미국 생활이 한국에서 살았던 세월보다 훨씬 길고, 이곳이 내 삶의 터전인데도 매거진의 타이틀은 ‘이방인’이다. 아직도 이곳은 불편한 시선이 섞여 있는, 익숙하다가도 낯설어지고, 알다가도 모를 곳이기 때문이다.  


막상 매거진을 만들고나니 숙제를 하는 학생마냥, 일정한 시간이 되면 뭔가를 꼭 써야 할 것 같은 강박 비슷한 것이 스멀스멀 밀려온다. 학생일 때 숙제는 늘 부담스러웠지만 이만큼 살고 보니 인생의 어느 한 점에서는 숙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그 숙제를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게 된다.


메모를 하는 습관은 늘 가지고 있던 것이었지만, 브런치에 일상을 기록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문득 지나가는 보이는 풍경 하나, 책을 읽다가 밑줄을 치게 되는 문장 하나,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하나. 







그렇게 우연히 만나는 장면들 안에 이야깃거리가 있다. 더하여 브런치 동네를 헤집고 다닌다. 너무나 많은 읽을거리의 홍수 속에서, 이 편한 도구를 적절하게 이용하는 것도 사는 일에 참 유용하겠구나 싶다. 텃밭을 시작하는 햇내기 농부가, 꽃밭을 만들고 싶은 꽃을 사랑하는 이가, 나처럼 신변잡기를 써서 나누고 싶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했던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 와인과 칵테일에 관한 이야기, 주식과 돈 버는 이야기까지. 말 그대로 글의 바다에서 난 평영인지 배영인지 구분이 안 되는, 말 그대로 몸을 앞뒤로 뒤척이며 헤엄치기를 한다. 수영을 잘 못하면서도 계속 허우적거린다. 사주팔자에 관한 르포도 읽고 캐나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국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만난다. 선생님이 갓구워낸 바삭한 과자의 고소함도 코끝으로 다가오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그들과 동행하여 여행도 하고, 한 번도 음미해 보지 못한 칵테일을 그들과 함께 마신다. 


그러다가 난 문득 홍대 앞 분홍 집에서 그녀의 고운 시 한 편을 낭송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이 가고 있다는 이 느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모든 분들이 친구 같고, 동생 같고, 언니 같고, 동행자의 마음이 되어 한 곳을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는 옆에 있는 사람이 한마디 거든다. 

"뭘 그렇게 열심히 읽어? 잔 글씨들… 눈만 더 망가져…"


상관없다. 어차피  쓰는 안경이고 또 돋보기까지 장착되어 있으니 별 염려할 것이 없다. 무슨 마술 상자를 연 것처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또 풀어 간다. 다음날 앱을 열면 읽다가 끝냈던 곳으로 정확히 데려다준다. 이어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살면서 만나는 이야기들, 만났던 이야기들 풀어놓으며 오늘도 다른 이들의 마술 같은 이야기들을 섭렵한다. 알라딘 양탄자를 타고 마술 램프의 연기를 솔솔 피우며 손끝을 움직여 서서히 나른다. 천천히 오래오래... 모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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