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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Feb 28. 2022

봄 배달 왔어요

콜로라도 일상


    


오랜만에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 미국은 오미크론 확진자 수가 차츰 줄어들고 있고, 나도 이 지루함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몇 가지 음식을 만들고, 윷놀이 판을 찾으며 반가운 얼굴들을 기다렸다. 달콤한 케이크와 함께 초봄의 상징인 튤립을 한 아름 안고 왔다. 만개한 꽃잎들처럼 우리들의 웃음꽃 또한 활짝 피었다.


노랑꽃에 물든 마음은 노란색이 되어 이야기 꽃을 피운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아줌마들은 모이면 왜 이리 말을 많이 할까. 혼자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준비했던 윷판은 펼쳐 보지도 못했다.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니까.'

'맞아,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 


이렇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끝도 없다. 해가 중천이었을 때 만났는데 어느새 창밖은 어둑어둑, 어둠이 밀려온다. 저녁까지 해결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다들 주부이다 보니 총총히 돌아갔다. 




친구들이 사 온 노란 튤립



설거지까지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참 든든하다는 생각을 했다. 렇게 찾아와 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는 내가 나이가 많아 왕 언니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만남을 주저한적도 있었다. 모범이 돼야 한다는 생각, 지나온 내 삶이 모범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하지만 이제 그런 부담감은 사치다. 그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더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며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한다. 

   

노란 튤립이 조금 더 잎을 펼치고 푸른 잎새 하나는 꽃병 옆으로 삐죽 손을 내밀고 섰다. 환한 조명 아래에서 간절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라서 더 그럴까. 그 노란색이 더욱 곱다. 


노란색 안으로 들어가 본다. 지난날의 내 삶은 빨강에 가까운 치열함이었다. 은퇴를 하며, 새 가족을 맞으며, 한국을 자주 드나들며 삶의 색깔은 빨강과 노랑의 가운데인 주홍인 것 같았고, 이젠 완연한 노랑이다.  노랑은 봄의 전령사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부드럽게 여겨지는 안정된 마음의 색깔이다. 연두와 초록과 어우러지며 새 계절을 조급하게 기다린다.


며칠 전 동네에서>



아직 창 밖 로키산맥 산정에는 하얀 눈이 가득하고, 눈 이불을 덮고 있는 마당은 아직 겨울인데도, 마음은 성큼 봄을 향한다. 


이제 그만 마스크를 벗고 분홍 립스틱을 칠하고 외출을 하고 싶다. 먼저 다가가 손을 잡고 안부를 묻고 깊은 포옹을 하며 사는 이야기 두런두런 나누고 싶다. 얼었던 강물이 풀리는 우수가 지나고 곧 경칩이다. 시간과 계절을 거스를 사람은 누구도 없다. 따듯한 봄이 오면 한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을까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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