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즌을 끝내고
드라마를 보면서 쉽게 우는 편이지만, 이렇게 현실적이고 시간이 지나도 가슴에 오래 남을 것 같은 드라마는 많지 않다. 코우노도리는 일본 대학병원의 산부인과와 NICU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아이를 갖길 희망하는 나로서는 드라마의 한 회 한 회가 기쁨, 또는 슬픔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시간이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이야기이고 나에게는 꼭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이 병원에서는 거의 매일 일어난다. 출산은 기적이다. 코우노토리 의사가 매일 하는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보다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산모가 죽거나 아이가 위험한 상황이 많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산모가 출산 전에 의식을 잃고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남편이 아이를 택할지 소생 확률이 적은 부인을 택할지 고민하는 에피소드였다. 남편은 괴로움에 며칠을 고민했지만 의식이 있을 당시 아내의 비디오를 우연히 보고 아기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는 영상에서 "나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기를 갖고 보니 나보다 소중한 게 생겼네."라고 말했다. 그 영상을 보고 남편은 오열하며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자기 자신보다 무조건 아기를 살리는 것을 선택할 거라고 말한다. 그 에피소드를 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현실은 더 잔혹하고 슬픈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기를 가졌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긴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산부인과 의사 두 명과 신생아과 의사 한 명, 그리고 조산사 한 명이 각자의 이유로 페르소나를 떠난다. 의사들은 자만하다가 의료 사고를 낸 후에 더 낮은 곳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한 것도 있고, 섬에서 수십 년 간 산부인과 의사로 지내셨던 아버지를 여의고 자신이 그 섬에 들어가 아버지를 이으려 하는 의사도 있다.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아기를 사랑하며 생명 하나하나를 최선을 다해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난 배우 하나만 보고 드라마를 선별했지만, 그런 것 치고 이 드라마는 너무너무 따뜻했다. 보는 내내 많이 울고, 웃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 여기게 하는 사건과 장면들이 많았다. 주인공 코우노토리 선생은 BABY라는 가명으로 쉬는 날에는 피아니스트로 공연을 하는데, 긴급한 일이 잡히면 공연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관객들은 어리둥절하지만 그는 가발을 벗고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병원으로 뛰어가는 낭만적이면서 직업의식이 투철한 의사다. 출산은 기적이기 때문에, 그는 기적을 바라며 또 한 번의 긴급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한다. 시노미야 선생은 과거엔 착하고 싫은 소리 못하는 의사였지만, 흡연을 계속하는 산모에게 강하게 말을 못 하다가 결국 조기박리로 산모는 사망하고 아기는 의식불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시노미야 선생은 180도 바뀐 모습으로 산모를 차갑게 대한다.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산모를 위하고 따뜻하지만 겉으론 냉소적이고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인 의사다. 시모야 선생은 처음엔 연수의였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흰 가운을 입은 산부인과 의사가 된다. 하지만 친구 같은 산모의 손 떨리는 모습을 보고 갑상샘 중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검사를 권하지 않았고, 그 산모는 출산 도중 심정지로 숨을 멎게 된다. 매우 분하고 억울하고 죄책감이 들었던 시모야 선생은, 의사를 그만둘까 하다가 구명과로 자원해서 트랜스퍼하게 된다. 사람을 한 명 잃었으니 구명과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을 열심히 배워 산부인과로 돌아오겠다는 멋진 다짐이었다. 드라마 후반부에 시모야는 아직 구명과에 있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산모가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때 구명과의 일을 다하면서 차분하게 응급 제왕절개를 성공적으로 끝낸다. 출산도 하였고 사람도 살려낸 멋진 구명과 의사가 된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스토리가 있는 코우노도리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 응원하게 되고 공감하게 된다. 의사라는 직업이 돈과 명예를 떠나서 사람에게 얼마나 숭고한 일을 하는 것인지 이 드라마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코우노도리를 보면서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 산모들은 자연분만을 시도하기 전에 제왕절개를 먼저 선택하여 낳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자연분만을 하더라도 무통주사를 꼭 놓아달라고 이야기하라는 유튜버들도 많이 있다. 아이를 낳는 고통은 말로는 전혀 설명이 안 되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고통이기에,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일 수만 있다면 나도 그런 선택을 할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일본의 몇몇 산모들이 산통을 느끼며 출산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아도 애정을 많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병원도 오지 않고 의사가 아닌 산파가 있는 조산원을 택한다. 이 에피소드의 산모는 제왕절개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고집을 부리며 자연분만을 원하고 의사는 난감해진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믿기 힘들 것이다. 나는 일본의 문화나 일본인들의 생각을 깊게 알진 못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대본이라고 해도 이 드라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창작물이기 때문에 여기서 나온 이야기들은 실제 사건들을 재구성한 것인데, 실제로 아직도 저런 생각을 가진 산모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픔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아픔을 겪어야 내 자식에게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또 한 가지 감동했던 것은, 드라마의 마지막 에피소드였다. 한 부부가 산전검사를 통해 14주 된 아기에게 다운 증후군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가 부모님은 보통 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다운 증후군이 있는 아이는 키우기 너무 힘들 것이라며 중절 수술을 권했다. 의사도 이것은 부부의 삶이기 때문에 부부가 어떤 결정을 하던 존중하고 서포트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부부 3년간 난임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고, 초음파로 보이는 아기의 모습이 너무 활달해 보였던 것일까. 산모는 임신 유지를 택한다. 아름다운 에피소드였지만 내가 저 산모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남긴 스토리였다. 내 배 속에 아기가 자라는 것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은 못 하겠지만, 아기의 삶과 부모의 삶을 상상해 보면 아기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이것 또한 본인이 되어보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건방진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산모는 다운 증후군이 있는 아기를 낳기로 결심하고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장애아의 엄마가 쓴 에세이를 읽어본다. 그리고 다운 증후군 아이들의 놀이 공간을 직접 찾아가서 그 아이들의 삶과 부모의 삶을 더 깊게 살펴본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 그 아이의 n번째 검진 장면이 나오는데, 너무나 사랑스러운 얼굴을 가진 딸과 엄마의 모습에 깊게 감명을 받았다. 엄마의 사랑은 무한하고, 부모와 아이의 첫사랑을 지켜주고 싶은 의사의 노력도 정말 나를 눈물짓게 만든다. 오랜만에 본 멋진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꼭 보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네덜란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에세이는 꼭 읽어볼 만하니 찾아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