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마지막으로 언제 뵈었는지, 그때의 모습이 어떠셨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벌써. 당뇨 때문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는데 그때 정말 정말 고생이 많으셨어요. 20대 초반이었던 저는 어떻게 당신을 맞이해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지나고 나서야 후회한다고 하죠. 저도 마찬가지인가 봐요. 하필 많이 아프실 때 독일에서 지내고 있어서 보고 싶을 때마다 직접 찾아뵐 수도 없었으니 그게 많이 후회가 돼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신 곁에는 할아버지가 옆에 계셨지만 가족들을 통해 듣는 소식은 매번 걱정되는 것들 뿐이었네요.
독일에서 겨울을 나고 있을 때 저는 당신의 마지막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아주 다급한 전화를 하셨다고 동생이 알려주더라고요. 순간 저는 표정이 싹 굳고 뜨거운 눈물만 조용히 주룩 흘렀던 것 같아요. 장례식을 못 가서 혼자 조용히 묵주기도를 바쳤던 게 생각나요. 키는 저보다 한참 작으셨지만 강단 있게 항상 제 곁을 지켜주셨던 당신이 많이 그리워요. 12월 27일이 되면 마음속으로 매일 기도를 해요.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시라고요.
누군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만약 세상의 그 어떤 사람과 딱 한 번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면 누구와 할 거냐고요. 그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투자자나, CEO나, 위대한 사업가 따위의 답을 기대했겠지만 저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당신을 떠올렸어요. 잡곡밥에 콩자반, 고등어조림, 총각무김치, 자른 김에 된장찌개. 당신을 떠올리면 같이 따라오는 구수한 밥상. 식탁에 모여 앉아 쇠로 된 컵에 물 한 잔씩 떠놓고, 당신의 필살기 양념게장도 같이 해서 저녁 한 끼 하고 싶네요. 그리고 제가 많이 보고 싶었다고. 한 번도 잊은 적 없다고. 살아계실 동안 정말 정말 감사했다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사랑해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