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조각들
친구의 결혼식에서 친구는 선교사로 함께 외국에 떠나게 될 남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꽃길만 걷지 못할 거란거 알아요. 하지만 절대 그 어둡고 힘든 곳을 혼자 가게하진 않을게요."
남의 사랑 고백에 내가 눈물을 흘리는게 이상해보이겠다 싶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시울은 붉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항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내달려 비로소 이루어냈을 때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 길인지, 내가 그만한 능력이 있는지, 내가 가진 것이 충분한지를 늘 계산하고 걱정하며 최선의 삶을 살아내고자 애쓴다. 하지만 삶이라는 항해의 목적이 어딘가에 반드시 도달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항해 그 자체라면 어떤가. 애초에 인생에서 반드시 도달해야할 목적지는 없다. 망망대해 같은 삶의 시간들 속에 유영하는 모든 순간이 그저 삶 자체라면 그 안에서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나는 산책을 참 좋아한다. 산책은 반드시 도달해야하는 목적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함께 걷는 그 사람, 그 시간, 그 공간, 그 순간이 목적이 된다. 그 길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험한 길이든, 꽃길이든, 그저 곁에 함께 걷는 이의 이야기와 표정에 울고 웃으며 온전히 그 순간을 함께 채운다. 네가 있기에 목적지가 생기고, 네가 있기에 꼭 목적지에 닿지 못해도 이미 충분하다.
함께라면 망망대해같은 삶의 모든 항해가 그 자체로 삶의 과정이자 목적, 그 의미가 된다. 어린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설 때 이 길이 혹시 잘못된 길은 아닌지, 우리의 돈은 충분한지, 어떤 방법으로 가야할지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는다. 엄마와 '동행'한다는 그 사실 하나로 아이에게는 어떤 걱정도 두려움도 불필요해진다. 길을 잘못 들었어도 엄마와 함께니까, 엄마는 날 떠나지 않으니까, 결국엔 엄마와 웃으며 잠자리에 들 것이다. 온전한 신뢰의 동행은 그렇게 두려움을 몰아낸다. 동행 자체로 이미 온전하기에 동행하는 삶에는 실패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