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엌

의미의 조각들

by 밍츠

부엌은 30년동안 나와는 상관이 없는 공간이었다. 그곳은 오롯이 엄마의 공간. 탁탁 도마소리와 보글거리는 찌개냄새, 매일 새 밥을 지어 상에 올리던 엄마는 부엌이 자신의 방인마냥 항상 그곳에 머물렀다. 쉬는 시간 마저도 부엌 의자에서 쉬던 엄마. 그랬던 엄마는 내가 서른살, 결혼하기 전까지 단 한번도 나에게 설거지조차 시키지 않았다. 8남매 시댁의 맏며느리로 살아온 엄마가 딸을 귀하게 키우는 방법 중 하나였으리라. '하던 버릇들면 무의식중에 니가 다 한다' 라며 행여 딸이 사서 고생할까싶어 엄마는 나를 30년 동안 부엌에 세운 적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 며느리, 아내로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엌이 나의 공간이 되는 엄청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 아이의 탄생이었다.

내 인생을 파괴하는 구원자, 첫 아이

요리책을 한 번도 사본적 없는 나는 '이유식 만드는 법' 책을 주문하고 한번도 먹어본적 없는 비트를 사서 손바닥이 시뻘개지게 갈게 되었다.

내 요리실력의 일등공신, 첫 아이


아이가 자라는만큼 다양한 음식을 먹여야했고 덕분에 나의 요리실력도 자랐다. 안 해보니 모든 것이 어려웠던 거지 막상 해보니 이제는 인터넷의 레시피를 보면 '오, 해볼만 하겠는데?' 싶고, 우리네 엄마들처럼 '이걸 돈주고 먹냐, 그냥 내가 해먹는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으니 정말이지 천지개벽수준의 변화다.

30년간 설거지 한 번 안 해본 나를 부엌에 세운 건 부모님도, 남편도 아닌 내 아이였다. 그래서 나에게 부엌은 '무조건적 사랑'의 공간이다. 나처럼 요리에 흥미도, 소질도 없는 사람에게는, 인스타의 밥상처럼 멋드러지진 못해도 소박한 밥상이나마 내 손으로 차려주겠다고 부엌에 서는 유일한 이유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음식을 정말 잘한다. 하지만 일흔을 앞두고도 엄마는 말한다. '밥 안 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라고. 이젠 나도 안다. 요리를 좋아해서 잘한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부엌에서 살았던 이유는, 오로지 '사랑'이었음을. 그리고 이제 부엌은 나의 공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