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뒷문이 열리고, 내 마음이 닫혔다.

첫 번째 위기, 무력감

by 이루비
해당 이야기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이름이나 특성은 다소 각색되었습니다.


첫해 맡은 아이들이니만큼 큰 애정과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다. 그렇게 열정과 희망과 설렘을 갖고 일하던 때에 겪은 그날의 감정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더운 여름이었고, 여름방학을 일주일 남긴 날이었고, 내 생일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아이들은 특유의 맑은 웃음으로 밝게 웃으며 손꼽아 방학을 기다렸고, 나 또한 교직생활에서의 첫방학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갖고 있는 나날들이었다.


첫해 내가 맡은 반에는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처럼 자폐에는 굉장히 다양한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100명의 자폐아가 있다면 100개의 특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반의 그 아이는 또래보다 성장이 빨랐고, 언어적 능력은 4~5세 정도였으며 “네, 아니오.” 정도의 대답만 가능했다. 순한 듯 보였지만 종종 교실을 탈출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자기표현을 하거나 자신의 앞길을 막는 친구가 있으면 밀거나 때리거나 꼬집는 행동도 종종 있었다.


아이가 교실을 종종 탈출해서 수업 중간중간 교무실에 전화해 협조를 요청하며 아이를 찾을 때도, 아이가 기분이 안 좋아서 책상을 쾅쾅 치거나 소리를 지를 때도 최대한 그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아이들을 보호하며 지도하는 것에 집중했다.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에 대한 공포심을 갖지 않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이해시켰고, 그 아이의 행동 교정을 위해 책도 찾아 읽었으며 직접 적용하며 지도해보기도 했다. 부모님과의 상담에서 솔직한 의견을 말하며 협조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손등을 꼬집거나 밀치고 다니는 등의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수없이 반복되고, 수없이 올바르지 않은 행동임을 지도하고, 피해 학생들의 학부모에게 연락하며 대신 사과드리기를 수십 번.

이때까지도 나는 내가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내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고, 이 정도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정도가 심해지던 어느 날, 화창한 여름날 그 아이는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내가 손 쓸 틈도 없이 자기 앞에 있었단 이유로 3명을 넘어뜨리고 2명의 뺨을 때렸다.

물론 그게 그 아이의 악의나 의도는 없는 본능적인 행동이었으나 잘못된 행동임은 분명했다. 그대로 두면 추후 행동교정이 어려워져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떨지 빤히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 아이의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바쁘신지 받지 않으셨다. 하이톡으로 연락을 남겼다.

“어머님, 전화가 힘드신 것 같아 짧게 하이톡 남깁니다. 요즘 철수의 행동이 다소 폭력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교우관계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됩니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어려서 보복하지 않지만, 더 커서는 오히려 철수가 반대입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가정에서도 함께 지도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이즈음엔 나도 슬슬 지쳐가던 쯤이었다.

계획적인 성향인 나에게 통제불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은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수업 중 잠시 눈을 떼는 순간 교실을 나가 사라지거나, 다른 학생을 꼬집는 등 교사인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지속되어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생길까. 오늘은 제발 무사했으면 좋겠다’ 하는 불안함과 함께하는 매일이었다.

게다가 26명의 학생들의 선생님이지만 내 에너지의 대부분은 그 아이를 살피는 데에 쓰여, 나머지 25명의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미안함도 쌓여갔다.


근데 그다음 날 출근하고 보니 그 아이의 어머님이 상당히 화가 나 있으셨다. 이유는 전날 내가 보낸 하이톡 내용 중 ‘폭력’에 꽂히신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필요한 말이었다. 그런데 단어 하나에 기분이 상하셔서는 해당일 미리 연락도 없이 수업 중인 교실로 어머님이 아이와 할머니까지 모시고 오셨다.

지금처럼 경력이 조금이라도 쌓였었다면, 아이만 교실로 들어오게 하고 수업 중이니 나중에 상담 잡고 오시라고 했을 텐데 그때 난 고작 4개월 차였다.


수업 중이라 아이들에게 할 일을 나눠주고는 잠시 인사만 하고 아이를 교실로 들여보낼 생각으로 복도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들은 말은 ”감히 철수가 폭력적이라고 했느냐. 폭력이라고 했느냐. 다른 게 폭력이 아니고 네 말이 언어폭력이다. “라는 말들이었고, 나는 그렇게 복도에 서서 감정 쌓인 소리들을 20분가량 들었다. 들으면서도 아이를 위해 필요한 말이었는데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속상하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속상한 마음이 왜 교사를 향한 화살로 이어져야 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나는 이렇게 수업 중에 학부모가 찾아와서 교사에게 감정을 쏟아도 교사를 보호해 줄 시스템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옆 반 선생님도, 관리자도 날 돕지 못했다.


더 이상은 아이들을 교실에 둘 수가 없어서 내 상처받은 감정은 뒤로 하고, 최대한 할머님과 어머님을 진정시켜 드린 후 돌려보내려는데 반 아이가 복도로 나왔다.

그 사이 철수가 한 친구의 손등을 꼬집은 것이다. 당한 아이가 그 사실을 알리고자 “선생님 철수가 제 손등을 꼬집었어요.”하며 나왔다.

고자질이라기보다 알림에 가까운 말이었다. 철수의 행동이 반복되고 자주 일어나면서부터 내가 반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똑같이 되돌려주려는 행동은 하지 말고, 선생님한테 알리면 선생님이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선생님인 나에게 알리러 온 것이다.


근데 철수의 할머님이 대뜸 내 눈앞에서 나를 슬쩍 밀더니 교실 뒷문을 활짝 열어젖혔다.열어젖히고는 이렇게 외쳤다.

“너희들이 철수를 이해해 줘야지!!!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순간 나는 정지된 듯 멈춰 서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때 나는 정신이 들었다.

‘아 내가 여기서 얼타면 피해는 아이들이 보는구나.’


얼른 아이를 교실로 밀어 넣고는 뒷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그제야 단호하게 “지금은 수업 중이고, 방금 하신 행동은 선을 넘으신 것 같습니다. 반 아이들 지도는 제가 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철수를 지금도 많이 이해해주고 있고, 그건 당연한 게 아닙니다. 내일 상담 잡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그날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아무렇지 않은 듯 상처받은 마음을 숨기고 아이들에겐 환히 웃으며 하교시켰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내보이는 것 또한 교사의 덕목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그날 퇴근길, 차 안에서 나는 눈물이 터졌다.

그동안 철수를 아낀 마음과 지도하고자 했던 노력과 열정이 부정당했다는 허탈함.

그 상황에서 그저 듣고 무엇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

내 눈앞에서 교실 뒷문이 열리고 아이들에게 호통치게 두었다는 죄책감.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이런 상황에서 교사와 다른 학생들을 지켜줄 시스템의 부재에 대한 분노와 고립감.


잘못한 건 내가 아닌데 나는 내가 작게 느껴졌다.

근데 그날 서이초 사건이 터졌다. 남 일 같지 않았다.

예측불가능한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괜찮았는데, 나는 처음으로 이런 환경이라면 교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밤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마음이 아픈 상태로 다음날도 나는 웃으며 출근했다.

참 역겹게 느껴졌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 어딘가가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런데도 웃고 있는 내가 낯설고 역겨웠다.


근데 우리 반 아이가 나에게 편지를 하나 건넸다.

아직도 문구 그대로 기억한다.


“선생님 가르쳐주셔서 감사하고,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밖에서도 행복하세요.”

어쩌면 나는 그 편지 덕에 그 해를 버텨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참 단순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마음이 텅 비고,

말 하나 행동 하나에 다시 채워진다.

성악설을 믿다가도 성선설을 믿게 되고, 의지가 생긴다.


말 하나, 행동 하나로 다른 사람 인생에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을까.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가끔 보면 나에게 아이들이 그런 존재가 되기도 한다.

애써 웃은 나에게 진짜 웃음을 주었기에 나는 그 해를 지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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