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지
평범한 하루의 어느 날이었다.
퇴근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을 먹었고, 후식으로 엄마가 구워준 고구마를 먹을 때였다.
일기를 쓰느라 내가 가장 늦게 고구마를 골랐다.
엄마가 남은 고구마를 건네며 말했다.
“고구마가 샛노란 게 달고 맛있어~ 얼른 먹어”
엄마가 준 고구마를 깐 순간,
웬걸.
샛노랗기는커녕 녹색의 이상한 색상의 고구마가 보였다.
왜 괜히 그것에 울컥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난 운이 없나 봐. 뽑기 운이 없어. 뭘 뽑아도 항상 내 거만 제일 별로야.”
살면서 한 번도 뽑기 운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고 느꼈던 나는 초등교사 생활을 하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꼈다.
초등교사의 1년은 2월에 결정된다. 2월마다 반 뽑기를 하고 업무 분장을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항상 그 학년에서 가장 힘든 아이가 있는 반을 뽑았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과의 1년이 나에게 최악이었던 건 아니지만, 분명한 건 다른 반보다는 힘든 1년을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3년 차인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나를 죽지 못하게 하는 고통은 나를 성장하게 할 거야.'라며 어느 드라마에서 들어봤을 법한 말로 나를 다독였다. 언제나 나는 따뜻한 안락함이 아닌 쓰고 아픈 성장통을 통해 성장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결국 이 고통 끝엔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근데 자그마치 3년째 어려운 반 당첨이라니.
'혹시 하늘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너는 이 직업과 맞지 않아. 이렇게 고통을 줄테니 스스로 눈치채고 나가떨어지라고...'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안 그래도 나는 진로 고민이 깊었다.
‘내가 이 직업과 잘 맞는 게 맞나.‘
‘나는 교육을 하고 싶었는데 보육을 하는 기분이야. 아니 교육 자체가 안되는 환경일지도.‘
‘내가 들인 노력에 비해 보람도 적고 급여도 적고, 제대로 교육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시대. 사회적 인식도 전만 하지 않고, 스승의 날이면 교사에 대한 안 좋은 여론만 들끓어.. 근데 실제로 내가 일하는 교육 현장에는 좋은 선생님들이 훨씬 많아.'
'교육 현장의 현실은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아. 다른 길을 찾아야 하나’
‘그렇다고 내가 이 일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데, 딱히 하고 싶은 직업도 떠오르진 않아. 자아실현을 직업으로 이루기 어렵다면 그냥 돈이라도 잘 버는 전문직?‘
‘지금 내가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면 직장 병행으로 해도 3년 이상이고, 또 그 업계에 적응하면 내 나이가..’
‘이직했는데 그 직업이 더 안 맞고 오히려 교사가 더 맞았었다고 느끼면 그땐 어떡하지?’
이런 고민들이었다.
이런저런 고민들로 벌써 한 달을 넘게 우울하게 보내고 있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아무렇지 않게 고른 고구마 마저 내 것만 꽝이라니.
고구마가 내 속의 버튼을 눌러버린 것이었다.
고구마를 들고는 한숨을 푹 쉬며 "난 진짜 운이 없나 봐."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아빠가 내 손에 샛노란 고구마 반쪽을 쥐어주며 말했다.
“운이 다른 쪽에 몰려갔나 봐. 그리고 너 운 있어. 설사 없으면 어때, 아빠가 줄게.”
아빠의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박혔는지 모르겠다.
든든했다. 녹색이던 고구마도 막상 먹으니 달았다.
운이 없다고 생각했던 건 노랗던 고구마와 비교함으로써 내가 미리 겁먹고 걱정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지금도 나는 비교와 앞선 걱정으로 겁먹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