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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기 Aug 21. 2022

[전시회 후기] 안드레아스 거스키 (220821)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 ~2022. 9. 4.

 사진전은 되게 오랜만이다. 수 년 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퓰리처상 사진전 이후로는 사진전에 간 적이 없다. 얼마 전 동기와 얘기를 하다가 전시회 얘기가 나왔는데, 이 전시회가 괜찮았다길래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전시회를 가보려고 노력 중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한 번도 안 가본 곳이라 설렌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평소에는 도슨트도 안 듣지만 동기가 도슨트도 좋았다고 해서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가이드 앱도 깔아서 들어보기로 했다. 기왕 추천 받아서 가는 거니까 좋다는 것들 다 해볼 요량이었다.

 금요일 퇴근 후 전시 정보를 찾아봤더니 사전예약이 필수라고 적혀있었다. 오전에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이번에도 개관 시간에 맞춰서 가려고 했으나, 개관 시간인 10시 표는 일요일만 남아있었다. 미술관 가는 길에 있는 파리바게트에서 샌드위치로 아침을 때우고, 도보로 40분 정도 걸리는 미술관까지 걸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신용산역에 있는데, 건물이 워낙 크기도 하고 용산역 일대는 이래저래 자주 다닌 곳이라 처음 가는 미술관이었음에도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내 목표는 미술관이긴 했지만 건물 자체는 아모레퍼시픽 사옥이었다. 사기업 본사 건물에 들어갈 일은 좀처럼 없어서 궁금했는데, 아주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이었다. 3층까지는 탁 트여있고 앉을 수 있는 곳도 많아서 용산역 근처에서 시간 때우기 좋은 장소 하나를 발견했다는 쾌감을 느꼈다. 앞으로 기차 탈 일이 있을 때 애용해야지.


굉장히 세련된 공간의 세련된 입구가 미술관이었다.

 개관 20분쯤 전에 도착하여 건물 내부를 구경하다가 10시에 입장을 시작했다. 들어갈 때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관람객이 있어서 불안했지만, 통제가 잘 된 것인지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된 것인지 전시장에서 크게 소란을 피우진 않았다. 

 오디오 가이드는 확실히 좋았다. 내가 갔던 전시회들에서는 오디오 가이드가 모든 작품을 커버하지 않기도 하고 작품의 해설에 억지스러움이 느껴질 때가 있어서 그다지 이용하지 않았는데, 거스키 展의 오디오 가이드는 모든 작품을 다루고 있어서 가이드의 순서를 따라 관람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해설 내용에서는 역시나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몇 군데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작품의 어느 요소를 집중적으로 보면 좋은지를 집어준다거나, 드러나지 않는 작가의 의도를 마치 오픈북 시험을 보는 것처럼 제시한다. 목소리의 떨림이나 종이 넘기는 소리 등으로부터 사람이 직접 녹음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런 것 때문인지 동기의 말마따나 적적함을 덜어주기도 하더라. 그리고 오디오 가이드에 대한 접근성이 좋다 보니 많은 관람객들이 각자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작품을 보면서 일행과 의견을 나누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나도 귀를 막고 있으니 그런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다는 것 또한 좋았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바레인 I>, 2005. 입체파 회화를 연상시키는 사진이라 인상깊었다.

 기억 속에서 매칭이 되지 않았지만, 학부 때 수업을 들으며 거스키의 이름을 분명 들은 적이 있었다. <몽파르나스> 라는 대작은 어느 예술 관련 수업에서 본 적이 있었다. 파노라마 형식으로 프랑스의 한 거대 아파트 건물을 포착한 것인데, 아파트 건너편의 두 시점에서 사진을 찍은 뒤 디지털 편집을 거쳐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오디오 가이드 가라사대 '디지털 포스트프로덕션'을 이용한 작품으로, 거스키의 대표작이다. 거시적 구조(아파트)와 미시적 개별성(창문 속 개개인의 삶)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진만이 가질 수 있는 무차별성이 느껴졌다. 작품명과 작가의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이미지는 머리에 남아있었다. 이미지는 참 강력하구나. 그래도 이제는 그 사진을 실물로 보았으니 누가 찍은 사진인지는 쉽게 잊지 않을 것 같다. 제목은.. 자신 없다.


전시공간 자체도 세련되고 미래적이었다. 우연히 사람이 없는 타이밍을 포착했다. 뒤의 작품은 <크루즈>, 2020.

 거스키는 비슷한 소재나 주제의 작품들을 연작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연작의 작품들을 모두 보여주는 대신,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하나씩 맛 보라는 듯이 전시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좋았다. 위 사진에 찍힌 <크루즈>도, 가까이에서 보면 앞서 말한 <몽파르나스>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노르웨이 랩소디라고 명명된 거대한 크루즈의 일정하게 생긴 창문 하나하나가 자세하게 드러난 것이, 전체적인 구조와 그 속의 디테일을 모두 놓치지 않고 무차별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의 강점으로 느껴졌다.


<아마존>, 2016. 아마존의 상품창고를 찍은 것이다.

 <99센트>(1999년 작, 2009년 리마스터)라는 작품과 <아마존>은 현대의 소비문화를 꼬집고 있다. <아마존>은 <몽파르나스>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편집을 거쳤다고 한다. 상품으로 가득찬 창고를 표현하기 위해 각각의 선반을 촬영한 뒤, 디지털로 합성하여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결과 수많은 상품들이 쌓여있는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해냈다.

 디지털 편집을 거친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서,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몇 가지 논점이 떠올랐다. 사진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낸다는 점에서 처음 등장할 때에는 회화를 위협했다. 근대를 거치며 회화는 자연주의를 탈피하여 추상화로 나아감으로써 활로를 모색했다. 언제까지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만 해서는 사진에 의해 대체될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회화는 작가가 표현하는 행위라는 것에 방점을 찍고, 하나의 예술 활동으로 살아남았다.


<SH 1>, 2013. 'SH'가 '슈퍼 히어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30분 정도가 걸렸다. I am Iron Man..

 사진은 어땠을까. 오늘날 사진'작가'들도 많고 사진전도 많이 열리는 것을 보면 사진도 하나의 예술 활동으로 인정되고 있음은 명확하다. 다만 대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사진이, 아날로그 시절에는 필름을 그대로 인화하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디지털 편집과 합성이라는 2차적인 가공을 거치고 있다. 거스키 또한 <몽파르나스>나 <아마존>에서는 촬영한 이미지들을 편집하고 합성하여 하나의 이미지로 재구성했고, '바다' 연작에서는 직접 촬영하지도 않은 위성사진을 가공했으며, 'SH' 연작에서는 영화에 나오는 슈퍼히어로들을 합성하여 작품에 등장시킨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 사진의 강점이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진에는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렸다. 이를 십분 활용한 것이 지금의 사진 예술이다. 사진 예술은 기술의 발전이 열어준 이 가능성을 이용하여 다시금 회화의 특징을 모방하려 한다. 전시되어있던 거스키의 작품들 중에도 현대미술이라 해도 믿길 사진들이 있었다. 다만 최근 사진 예술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회화 모방은, 사진의 발명이 자연주의 회화를 위협했던 것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추상을 거친 파란만장한 발달사는 회화를 사진의 모방에 그 지위를 위협 받을만한 것이 아니라, 사진마저도 회화의 영역으로 포섭할만큼 강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제 XVII>, 2014. 결국 이 사진은 사진을 실은 책을 찍은 사진을 찍은 사진이 되었다.

 사진 감상의 재미는 '무엇을 찍었는지'에 있다고 생각했다. 퓰리처상 전시를 볼 때는 딱 그러했다. 이제는 사진에 담긴 대상이 전부가 아니라, 사진작가가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촬영기법과 편집 및 합성 요소들이 관건이고, 그 결과 어느 이미지가 완성되었는지를 보는 것이 마치 그림감상과 비슷해졌다. 예술이 무엇인지를 아직도 딱 잘라 설명할 수 없지만, 예술 분과로서의 회화나 사진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지고, '예술'이라는 범용적이면서 여전히 추상적인 개념만이 남게 되는 것 같다.

 대단한 카메라가 없어도, 이제는 휴대폰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 촬영은 더 이상 거창한 예술적 행위가 아닌 일상적인 행위다. 매일 수많은 이미지가 촬영되어 공유되고 있다. 그 모든 이미지를 '예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상을 포착하는 것에서 나아가 디지털 편집과 합성을 통해 기하학적이며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거스키의 작품활동은 예술로서의 사진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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