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0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 허준이 교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
死は生の対極としてではなく、その一部として存在している。
- 村上春樹, 『ノルウェイの森』 中
취미에 몰두하고, 사람을 갈망하는 것은 일상을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닐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외로움은 마치 죽음과 같아서, 그것을 마냥 두려워하고 회피하려는 것보다 담담히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어서, 자기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스스로도 불가능하다. 외로움은 이해받지 못하는 데에서 온다. 모두가 자신의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로운 것은 자기 뿐이라고 생각하여 타인에게 이를 이해해달라고 조르는 것은 어리광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처지에 있음을 깨닫는다면, 이는 약간의 위안이 된다. 외로움을 덜기 위해 소수의 특별한 인연에게 어리광 부리지 않아도, 완전한 타인에게서 안식을 발견할 수 있다.
죽음은 그 뒤에 아무 것도 없다는 점 때문에 괜히 장엄하고 숙연하다. 죽음은 도처에 존재한다. 피를 훔치려다 발각된 모기, 차에 치인 길고양이, 누군가의 부고.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철렁하고 숙연해진다. 어떻게 보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종착이고 그것 뿐인데.
“나를 잊지 말아줘. 내가 존재했고, 이렇게 당신의 옆에 있었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해줘.”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억과 추억은 빛이 바래고, 가장 선명한 것만 남긴 채 지워져 간다. 이미 지워진 부분은 돌이킬 수 없어서, 사진이든 글이든 모든 기억을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인연에게 너무나 죄스럽다. 과거의 세부는 모두 지워지고, 결국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느낌만 희미하게 남는 것이.
스스로의 무력함에 질리지만, 흐르는 시간은 절대적이며, 그 앞에서 나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존재다. 내가 지나간 인연의 모든 기억을 남기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지나온 인연들에게 그 정도의 흔적 밖에 남길 수 없다는 것이 나 나름의 변명이자 최소한의 속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