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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소니아 Feb 15. 2024

예상치 못한 참사

일본 여행 3일차 (2024.01.17.수)

I. 기상

 오늘도 어김없이 07시 40분에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갔다. 어제 조식을 먹을 때는 몰랐는데 빵은 한명당 한봉지씩 가져가라고 적혀있었다. 어제 2봉지 가져간게 미안해졌다. 조식을 먹은 후 오호리 공원에서 런닝을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종아리가 너무 아팠다. 이때는 몰랐다. 벌써부터 종아리가 아파서는 안되었다는 것을..


II. 하야카겐 사건

  1. 분실 자각

 점심을 뭐먹을지 고민하다가 숙소 근처에 있는 일본 프렌차이즈 음식점이 있다고 하여 가서 장어덮밥을 먹을 계획이였다. 직접 음식점에 가서 영업시간을 확인했고 24시였다. 그래서 나는 들어가려 했다. 식당에 직원들도 있었으나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포기하고 근처 라멘집으로 갔다. 라멘집은 11시 30분부터 시작이였고 내가 문앞에 선 시간은 11시 10분쯤이였다. 기다릴겸 안챙긴 것이 있나 주머니를 확인해봤는데 하야카겐이 없었다.


 시간도 20분 정도 여유있으니 숙소가서 가져오기로 하고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에서 하야카겐이 보이지 않아 대대적으로 20분동안 가방과 방을 수색했다. 나오지 않았다.. 대참사였다. 하야카겐에 8천엔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서 하야카겐이 재발급이 가능한지 검색을 해봤다. 기명식 카드로 발급받았다면 재발급이 가능하다고 했다.(물론 1,000엔이 들지만..) 환호성을 지르고 나는 오호리 공원역 지하철로 갔다. 가서 기명식 하야카겐 카드를 분실해서 재발급하러 왔다고 말했고 서류 작성을 했다. 작성한 뒤 무언가 영수증 같은 것을 받았고 싸인을 하라고 했다. 싸인을 하고 보여줬더니 번역기로 나에게 내일 이 영수증을 들고 찾아오라고 하였다. 나는 바로 재발급 해줄 줄 알았는데 아니여서 시무룩했다.

 일본에서 행정처리를 경험해보다니 색다른 경험이였다.

 그렇게 재발급 신청을 하고 라멘집에 와서 시오라멘을 먹었다.


  2. 선호와 시선

 커스터마이징과 각인을 좋아하는 나의 선호가 도왔던 사건이였다. 사실 하야카겐을 발급  받을 때 무기명식과 기명식 카드가 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기명식 카드는 발급받는데 오래 걸린다고 하여 무기명식 카드로 발급받고 보증금 반환을 하거나 한국에 돌아와서 중고로 판매하라고 하는 글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커스터마이징을 좋아하고 내 이름이 새겨진 일본의 교통카드를 기념품 중 하나로 갖고 싶어 기명식으로 발행했다. 기명식 카드로 발급을 받는 것도 3분조차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내 물건에 각인된 제품이 다른 이들에 비해 많다. 공군 로고와 내 이름이 영어로 각인되어 있는 도킹형 보조배터리와 일반 보조배터리, 그리고 영어 필기체로 'Ju M.Y'라고 자수가 박힌 공군 후리스와 랜더스 점퍼 등 4개나 있다. 이런 나의 커스터마이징 선호가 공중분해 당할 뻔한 8천엔(한국 돈으로 약 8만원)을 살린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각인하거나 자수를 놓은 물건을 보여주면 '돈을 왜 그런 곳에 쓰냐','그런 곳에 쓸거면 나줘라.' 등등 어느정도의 비판을 나에게 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막상 그들에게 그들의 이름이 각인된 물건을 주면 다른 선물들 보다 더 좋아하고 타인에게 자랑하는 등 더 좋아하는 것이다. 이쯤되면 시기심이나 질투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타인이 보기에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자기애가 너무 넘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이런 타인의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어림짐작해보면 '각인'은 선물 받는 값비싼 물건이나 기념품에만 들어가는 것이라는 시선이 깔려있는 상황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다. 각인되는 물건의 존재가 '자신의 돈을 들여서 자신의 물건에 하는 것은 아깝지만, 타인이 해서 주는 선물에 되어 있는 것은 갖고 싶은'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만약 내 물건에 각인하는 것에 대한 주변인들의 비판에 주눅들어 내 선호를 접어버렸다면 하야카켄 분실 사건은 정말 일본 여행 중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론이든 아니든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면서 자신의 만족도를 채울 수 있는 이런류의 선호는 타인의 비난 같은 비판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분실사건의 내용을 내 지인들 중 비난 같은 비판을 가했던 지인들에게도 이야기해줬는데 그 지인들도 신의 한수라고 극찬한 것을 봐서는 타인의 시선에 무조건적으로 휘말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결론도 내렸다.


III. 험난한 행군

   1. 라라포트 후쿠오카로 가는 길

 교통비가 담겨있던 하야카겐을 분실했기에 현금을 최대한 아끼고자 하카타역에서 내린 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하카타역에서 도보로 한 3키로 정도 됐던 것 같다. 하카타역에서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리얼 로컬이 나타났다. 사실 내 숙소도 리얼 로컬이였기에 이곳도 무섭지는 않았다. 주택가를 지나며 유치원, 초등학교, 학원, 카센터 등등을 봤다. 일본의 유치원은 상당히 신기했다. 유치원 때부터 모자와 교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유치원생들이 함께 웃으며 뛰어 노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일본에 살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부모의 눈치를 보느라 선생으로서의 일을 할 수가 없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니 일본의 이런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2. 개성과 소속감

 일본에 오고 나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일본의 학생들이 교복을 매우 FM대로 입는 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학생들은 교복을 FM대로 입지 않거나 교복을 입기 싫어서 사복을 입는 것이 흔한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부분이다. 일본의 국민성 중 하나인 조직 혹은 사회에서 혼자 튀어나오지 않기가 유치원에서의 조기교육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개성보다 소속감을 더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보기 좋았다. 학창시절 나는 학급회의나 전체 학생회의 때 이 교복문제로 친구들과 논쟁을 한적이 많다. 나는 교복을 항상 잘 갖춰 입었고 이에 대해 불만이 없었다. 내가 교복을 입는 것에 불만이 없었던 이유는 3가지이다. 첫째, 소속감이다. 교복은 내가 학생 신분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어느학교의 학생인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옷이기 때문이다. 둘째, 낭만이다. 교복은 학생시절이 아니면 입을 수가 없는 옷이기 때문에 그 나이의 그 신분이 아니라면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옷 걱정을 안해도 된다. 만약 사복을 입는다면 매일매일 어떤 옷을 입어야할지 고민을 해야할 것이고 똑같은 옷을 많이 입으면 또 놀림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옷으로부터 들어나는 빈부격차를 가릴 수가 있다.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이 온갖 명품을 치장하고 학교에 오면 학생들이 명품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결국 그 학생들은 그 명품을 구매하고 싶어 부모님의 경제력을 한탄하거나 원망하는 경우가 올 수가 있다. 차라리 교복이라는 옷을 정해줌으로써 옷살 돈을 아낄 수 있고 고민할 것을 하나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교복을 입기 싫어했고 사복을 입고 싶어했다. 교복이 불편하다는 이유와 교복 마이의 디자인이 별로라는 이유여서였다. 교복이 자신의 개성을 죽인다는 이유도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교복이 불편하다고 하더라도 등교를 하고나서는 마이를 벗으면 편해지는 것이고 교복의 디자인이 별로여서 그렇다는 것은 이미 이 학교의 디자인을 알고 온 것인데 이제와서 그런다는 것은 뒷북이 심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이해가 안가는 사실은 교복을 절대 안입으려고 하다가 졸업식날이 되니까 그제서야 '아 이제 교복 못입겠네 ㅠㅠ'라고 하면서 교복을 못입음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정말 위선적이고 이중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문득 생각을 해보면 이 문제는 SNS로 연결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SNS로 다른 사람들이 따라가는 유행을 따라가려고 하고 SNS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며 많은 호응을 받고자 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예로 반일운동이 있다. 반일운동이 열풍이던 시절 정치에 무관심하고 아는 것이 없던 친구들이 SNS에서 반일운동 하는 것이 유행처럼 보이자 자신들도 생각해보지 않고 SNS에 반일운동 관련 게시글을 공유하면서 반일운동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일본여행을 떠났다. 이에 친구들은 요즘 반일운동하는데 너는 왜 일본에 돈쓰러가냐 매국노냐라는 말을 했다. 이에 나는 되물었다. 반일운동을 하는 이유와 반일운동을 했을때 얻는 이익이 뭔지는 아는가? 라고 이에 그 친구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였다. 이랬던 친구들은 시간이 좀 지나서 일본의 게임기인 닌텐도 스위치와 일본 게임인 동물의 숲에 열광했고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는 SNS에 일본여행 간 사진들을 올렸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얘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빠진 것 같지만 다시 교복 문제로 돌아오겠다. 이들은 SNS에 사복입고 외모가 괜찮은 사람들의 사진을 보면서 자신들도 학교에 사복입고와서 그들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좋아요'와 '친구 수'를 늘리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심지어 찍는 각도도 동일하다. 옷도 서로 빌려입거나 돈을 빌려서 사러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보면 SNS를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물론 자신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모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타인을 모방하는 것을 온전히 자신의 개성이라고 보아야하는지는 모르겠다.


 3. 라라포트 후쿠오카

 약 3키로를 걸어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아침에 런닝 뛰면서 아팠던 종아리 덕분에 더 고생해서 왔다. 도착한 시간이 타이밍이 좋게도 13시 50분쯤이였는데 건담은 정각마다 움직인다고 해서 10분정도 쉬고 바로 볼 수 있었다. 건담의 크기가 왠만한 건물보다 크니 정말 가슴이 웅장해졌다. 만약 저 정도 크기의 건담이 전장을 누빈다면 아군으로써는 얼마나 든든하고 적군에게는 얼마나 두려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라라포트 건물 내부는 일반 쇼핑몰과 다를 것 없어서 딱히 볼 것이 없었다. 그래도 건물만한 건담과 그 건담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는 것에 나는 만족했다.


IV. 하카타역

 아침부터 종아리가 아픈 상태로 런닝을 뛰고 또 3키로를 더 걸어간 상태라 이미 내 하체는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하카타역으로 갈 때는 버스타고 가기로 했다. 버스타고 하카타역에서 내린 뒤 하카타역의 쇼핑몰을 구경했다. 하카타역의 쇼핑몰 중 포켓몬 센터가 있다고 하여 포켓몬 센터에 방문을 했다. 정말 포켓몬 굿즈가 많았고 많은 인형들도 있어서 구매욕구가 생겼으나 참았다. 왜냐하면 나는 기념품을 구매할 때 프렌차이즈적인 물건(포켓몬, 애니메이션 등)말고 일본의 특색을 살린 물건만 구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카타역을 돌아보고 근처를 좀 돌아보다가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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