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데

by 명상

지난 14년여간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보니, 나는 스스로를 '프로이직러'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여러 번 명함을 바꿨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나는 때로 자의로, 때로 타의로 정든 책상을 떠나 새로운 문을 열었다.


이직의 이유는 매번 정당했다. 회사의 경영난과 경기 침체라는 외부의 풍랑이 있었으며,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맞지 않는 업무에 몸부림치다 내린 결정이 있기도 했다.

초창기의 이직의 기준은 명확한 숫자였다. 통장에 찍힐 연봉의 앞자리를 바꾸는 것이 유일한 동력이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기준의 결은 조금씩 달라졌다. 회사의 공기, 동료들의 온도,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나마 비치는 나의 내일. 나는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을 향해 기꺼이 목적지를 수정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마음을 납덩이처럼 짓누르는 '퇴사'라는 두 글자는, 과거에 겪었던 이직들과는 그 결도, 무게도 사뭇 다르다. 사람 관계의 고충쯤은 직장인의 숙명이라 여기며 무던히 넘겨왔건만, 이번만큼은 영혼의 밑바닥이 속절없이 깎여 나가는 기분이다. 나를 지탱하던 내면의 기둥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으려 무심코 펼쳐 든 부아 c 작가의 에세이 《외롭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다》에서 한 문장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없는 거야."


작가는 말한다. 단순히 환경만 바꾼다고 해서 삶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으니, 어떻게든 현재를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그 문장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멈춰 서 있었다.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뼈아픈 질문이 던져졌다.


나는 지금 단순히 이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일까?


나갈까 말까를 수백 번 고민하는 오늘도,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낙원을 찾아 도망치려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일까?


'버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그 문장이, 오늘따라 유독 가혹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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