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부러지지만 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

by 명상

오랫동안 나는 단단함이 곧 강함의 증거라고 믿어왔다. 납득할 수 없는 부조화의 순간마다 꼿꼿하게 내 목소리를 내고, 어떤 압력에도 휘어지지 않는 것이 삶의 주인으로서 품격을 지키는 유일한 선택이라 여겼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진실은 잔인했다. 굽힐 줄 모르는 그 완강한 기세는 세상의 충돌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나라는 존재를 더 날카롭게 조각내어 스스로를 찌르는 파편으로 남길 뿐이었다.


최근 나는 내 안의 낯선 그림자 하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부당함을 증명하려 애쓰는 나의 모습이었다. 노골적인 비방은 아닐지라도, 은근한 말투와 상황 설명을 덧대어 동료들에게 "내 생각이 맞지 않느냐?"라며 동조를 구했다. 내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타인의 동의를 수집하는 나의 모습을 자각한 순간, 등 뒤로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조직의 '갈라 치기'와 '편 가르기'를, 나 또한 정당성이라는 이름 아래 똑같이 답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들수록 나의 정신은 날이 선 채 피로해졌고, 내면은 알 수 없는 부대낌으로 뒤엉켰다. 타인의 동의를 빌미로 내 옳음을 구걸하는 행위가, 사실은 스스로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 일인지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대를 깎아내려 내 자존감을 세우려는 시도는 결국 나를 내가 비판하던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으로 만들 뿐이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소름 돋는 자각이 머리를 쳤다.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집착에 매몰되어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 그것은 곧 내가 지켜온 삶의 가치관 전체가 뿌리째 무너지고 있다는 위험한 신호였다.


그제야 보였다. 내가 지키려 했던 그 단단한 나무 같은 고집이, 사실은 나를 가장 먼저 부러뜨리고 있었다는 것을. 거센 비바람이 불어올 때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나무는 위풍당당해 보이지만, 정작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가지가 찢기고 뿌리가 들리는 것은 그 꼿꼿한 나무들이다. 반면, 보잘것없어 보이던 갈대는 바람의 방향대로 몸을 눕히며 끝내 부러지지 않는다.


"나무는 부러지지만 갈대는 부러지지 않는다."


갈대는 가냘픈 몸 하나로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유연한 줄기 속에 비바람을 흘려보내는 지혜를 품고 있다. 무례함에 똑같이 날을 세우고 내 논리가 정답임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시간들을 이제는 내려놓는다.


이제 나는 기꺼이 갈대가 되기로 한다. 어떤 논리로도 설명되지 않는 조직의 불투명한 선택이나, 중심 없이 일렁이는 타인의 감정 파고에 더 이상 내 평온을 내던지지 않는다. 타인의 동의를 얻어 내 옳음을 확인받으려던 조급함도 비워낸다. 그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잠시 몸을 눕힐 뿐이다.


이것은 비겁한 굴복이 아니다. 바람에 몸을 맡긴다고 해서 갈대의 속성이 변하지 않듯, 일터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불협화음에 잠시 고개를 숙인다고 해서 내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다시 원래의 나로 온전하게 돌아오기 위한 가장 지혜롭고 적극적인 저항이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 꼿꼿함을 과시하던 나무들은 뿌리째 흔들렸지만, 이름 없는 갈대들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늘을 향해 몸을 세운다.


나갈까 말까, 백 번째 고민이 오늘도 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오늘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기꺼이 흔들리며, 내 자리를 지켜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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