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식물원의 산책로를 걷는 일은 나에게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루틴이다.
특별한 생각 없이도 때가 되면 운동화 끈을 묶고 문을 나선다.
발바닥에 닿는 굴곡까지 다 외울 정도로 익숙해진 그 길은,
요동치던 불안을 잠잠하게 가라앉혀 주는 나만의 안식처다.
오늘은 문득 늘 걷던 방향의 반대편으로 발을 내디뎠다.
수없이 오가며 다 안다고 자부했던 길이었지만,
방향 하나를 비틀었을 뿐인데 풍경은 전혀 낯선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요즘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만 매몰된 채 땅만 보고 걷곤 했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자,
익숙하지 않은 주변 환경이 나를 깨웠고 그제야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늘 내 등 뒤에 있어 존재조차 몰랐던 풍경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꽃이 피기엔 이른 서늘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지만,
그 묘한 이질감이 굳어있던 감각을 깨웠다.
매일 걷던 길임에도 느껴지는 이 새로운 감각은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퇴사'라는 화두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나의 직장 생활 또한 이 산책길과 다르지 않았다.
출근과 동시에 켜지는 자동화된 시스템처럼,
나는 타인이 정해둔 좁고 단단한 보도블록 위를 무표정하게 달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시선을 멀리 두려 해도 이미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와,
그 그늘이 만들어낸 좁은 시야 속에 갇혀 나는 나만의 빛을 잃고 희미해져 갔다
아무 생각 없이 음악만 듣고 땅만 보며 걷던 산책길처럼,
나 역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풍경 안에서 나를 지워버린 채 보폭을 맞추는 법만을 익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퇴사'를 고민한다는 것은,
어쩌면 남들이 세워둔 낡은 이정표에서 고개를 돌려 나만의 길을 찾아보려는 생존 본능일지도 모른다.
산책로의 방향을 바꾼 것만으로도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듯,
지금의 이 막막한 고민 역시 내 삶의 다른 풍경을 마주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일 것이다.
눈앞의 호수는 고요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잔물결 너머로 봄을 준비하는 생동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의 퇴사 고민 또한 단순히 어딘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도피가 아니라,
나를 억누르는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 내 안의 숨겨진 에너지를 다시 틔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가려는 조용한 움직임이지 않을까?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늘 걷던 길이었지만 마음의 무게는 이전과 달랐다.
내일의 출근길은 오늘과 같은 풍경이겠지만, 나는 이제 안다.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방향을 틀어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