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직서는 왜 여전히 품 안에서만 만지작거리는가

by 명상

옆자리 동료가 이직 소식을 전해왔다.

언젠가는 떠날 친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마주한 그의 결정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더 좋은 조건으로 향하는 그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웃어주었지만,

그가 떠난 자리에는 묘한 잔상과 함께 묵직한 질문 하나가 남았다.


"나는 백 번을 망설이고만 있을 때, 이 친구는 언제부터 이 실행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마흔. 14년 차 직장인인 나의 사직서는 늘 마음속 품 안에서만 만지작거리는 낡은 종이 뭉치였다.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를 대며 갈팡질팡하는 사이,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닦고 먼저 문을 열고 나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질투라기보다, 스스로에 대한 당혹감에 가까웠다.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나도 저 친구처럼 조금 더 어렸다면, 저렇게 가벼운 몸짓으로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기회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20대의 이직이 ‘도전’이라면, 마흔의 이직은 ‘생존’이자 때로 ‘도박’처럼 느껴진다.

쌓아온 커리어와 포기하기 아까운 연봉의 안정감은 나이가 들수록 나의 발목을 무겁게 잡아챈다.

젊음이라는 그 무구한 용기가 사무치게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를 붙잡고 있는 건 정말 ‘나이’뿐일까?

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문장이 나를 매섭게 꾸짖었다.


“버릴 각오만 있고, 얻을 욕심이 없어야만, 비로소 번뇌까지 내려놓을 수 있다.”


이 문장에 나를 비추어보니 비겁한 내면이 투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익숙함과 안정감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고,

새로 옮겨갈 곳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무언가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는

‘얻을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나이가 가장 좋은 핑계가 되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아서 못 해’라는 말 뒤에 숨어, 사실은 버리지는 못하면서

얻고만 싶은 내 욕심을 정당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팽팽한 욕심의 줄다리기가 나를 번뇌의 늪에 가두고 있었던 셈이다.

이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없는 완벽한 이직만을 꿈꾸느라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나가는 동료의 실행력은 단순히 젊음 때문이 아니라,

그 욕심을 덜어내고 각오를 채운 결과였을 것이다.

아직 나는 버릴 준비가 덜 되었고, 여전히 내려놓지 못한 욕심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동료의 이직은 나에게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내 안의 번뇌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 거울이 되었다.

이번 주,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남아 있지만 마음의 무게는 조금 달라졌다.


백 한 번째 고민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버리지 못한 욕심이 무엇인지부터 차분히 골라내 보려 한다.

월요일 연재
이전 07화어느 날 문득,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