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용기의 밑바닥을 들킨 밤

by 명상

이제 꿈에서도 퇴사를 원하나 보다.


꿈속에서 예고도 없이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항상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퇴사'라는 단어가 무의식의 세계에서 드디어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던진 사직서가 아닌, 사측에 의해 등 떠 밀려 나가는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꿈이었지만, 현실과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던 그 순간의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결코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무의식조차 쉼을 얻지 못할 만큼 나는 이 조직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 사직서를 내던질 용기가 내게는 없어서, 꿈속에서나마 타인의 손을 빌려 강제로 이 지겨운 관계를 끝내고 싶었던 걸까?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현실적인 이유들 앞에 나는 자꾸만 작아진다.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라지만, 무작정 마음 내키는 대로 살기에는 앞으로 살아내야 할 남은 날들이 너무나 길고 막막하다.

훌쩍 떠나버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홀로 감당해야 할 내일의 무게가 내 발목을 무겁게 붙잡는다.


참 사는 게 어렵다.


매일 아침 마음을 새로 다잡으며 '나는 이곳을 고용했다'라고 주문을 외워보지만, 내 심리적 임계점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위태롭다.


문득 20대와 30대 초반의 내가 그리워졌다. 그때의 나는 근거 없는 자신감 하나로 무장한 채 호기롭게 굴었다. 지켜야 할 것보다 쟁취할 것이 많았던 시절, 실패는 그저 다시 시작하면 그뿐인 가벼운 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이제는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이 '내 몸뚱이' 하나를 온전히 지켜내는 일조차 버겁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나를 책임져야 하는 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예전엔 패기로 넘겼을 일들도, 이제는 당장 내일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무거운 책임감을 방패 삼아, 자존심이 깎여나가는 비겁한 인내를 묵묵히 이어간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비겁해져야만 하는 역설. 이것이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다.


꿈속의 그 불쾌한 권고사직은 어쩌면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등이었을지 모른다.

"너, 정말 이렇게까지 하며 버티는 게 괜찮은 거니?"라고 묻는, 소리 없는 비명 같은 것 말이다.


오늘도 나는 차마 내뱉지 못한 사직서를 가슴 깊숙한 곳에 밀어 넣는다. 꿈속의 무력했던 잔상을 털어내고, 현실의 신발 끈을 다시 묶는다. 이 삶을 온전히 지탱해 내야 할 주인이 나 자신임을 알기에, 요동치는 마음을 다시 한번 꾹꾹 눌러 담으며 문을 나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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