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회색눈의 계집으로 살아남기
우리 외할머니는 3·1 운동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져가던 1919년 4월,
오수의 개 이야기로 유명한 임실 오수의
광주이씨 가문의 천석꾼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천석꾼의 딸’이라는 말이 외할머니 삶을 따뜻하게 감싸주진 못했다.
아버지가 뼈대있는 양반이고 천석꾼이어봤자 뭐하리
외할머니는 사내도 아닌 계집, 첫 아내의 자식도 아닌,
이미 세 번째 부인을 맞이한 아버지의
둘째 부인의 소생이었다.
의료가 열악하던 그 옛날,
외할머니늬 아버지는 첫째 부인과 사별한 뒤
곧이어 맞이한 둘째 부인마저 잃었다.
그리고 다시 셋째 부인을 맞이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계모였던 셋째 부인은 외할머니를 미워하지 않았고,
외할머니는 이복 여동생과도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그래봤자 뭐하리.
이미 거쳐간 부인만 3명, 거기에 딸린 자녀만 여럿.
남존여비가 공기처럼 스며 있던 시대인지라
둘째부인 소생의 계집아이인 외할머니는 아버지의 시야 밖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외할머니가 겨우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밤송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며 외할머니의 눈을 찔렀다.
그 작은 사고는 외할머니늬 평생을 바꾸어놓았다.
시력을 잃은 눈은
빛을 머금지 못한 회색이 되었고,
세상 어느 곳에도 초점을 두지 못했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늘 왼쪽 머리카락을 길게 내려
그 눈을 살며시 가리고 다녔다.
아버지의 정실도 아닌,
이미 세상을 떠난 둘째 부인의 딸,
거기다 한쪽 눈까지 잃은 아이를
특별히 감싸주고 돌보는 사회였던가.
지금도 다른 외모로 살아가기 힘든데 하물며 그시절엔 오죽했으리
외할머니가 그 시대의 어둡고 차가운 공기를 어떤 마음으로 견디며 살아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