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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 Aug 24. 2021

식욕좋은 우리집 셰프의 사부작사부작

Sarah J #1 -주방에서의 사부작 거림

'사부작사부작'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이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나는 주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주방에서 사부작사부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먹성 좋은 삼남매 때문이기도 하고,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의 식사를 챙기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기에 보태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다. 나의 사부작 거림의 동기부여가 나의 식욕으로부터 시작되었을 때 그 만들어진 음식은 더 맛이 좋다.


그로서리 마트에서 사 온 신선한 원재료를 다듬고, 맛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는 조리법과 어울리는 양념을 만들어 맛깔스러움을 더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게다가 보기 좋게 플레이팅까지 마치고 났을 때 만나는 그럴싸한 결과물은 성취감마저 가져온다. 그렇지만, 이런 순간들이 나에게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신혼 시절, 나는 남편의 도시락을 싸야 했다. 신혼이니까 새색시답게 나는 매일 정성을 들여 도시락을 준비했다. 한 번은 애호박전을 만들었다. 도톰하게 썰어서, 밀가루 옷과 계란물을 차례로 입혀 전을 부치고, 마지막에는 총총 썰어 놓은 빨간 고추를 애호박전 위에 고명으로 올렸다. 내가 봐도 요리 잡지책에 나오는 사진처럼 너무 맛있고 멋스럽게 보여 뿌듯한 마음으로 싸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회사 직원들과의 모임자리에 가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남편의 상사에게서 도시락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 

"어쩌면 도시락을 그렇게 예쁘게 만들어서 싸주는 거예요? 지난번 애호박전은 너~무 예뻐서 못 먹겠더라."


덕분에 기분 좋게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

"내일 도시락으로 애호박전 또 쌀까? 아까 김 부장님이 애호박전을 칭찬하시더라고~ 너무 예뻐서 못 먹겠더라면서 이야기하시던데?"

"하하하! 예쁘긴 한데 애호박이 안 익었다고 하시더라고. 나는 다 맛있으니까 괜찮아. 근데, 자기도 아침에 출근 준비하느라 바쁘니까 그냥 간단한 걸로 싸주면 돼~"

헛.

그럼 아까 남편 상사가 나한테 애호박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칭찬이 아니었던 거네? 말 돌려서 나 놀린 거잖아! 음식은 정성이라고 생각했는데, 맛있는 음식이 아니면 그 정성도 부질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기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요리를 기본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한식조리사 자격증반으로 합류했다. 나는 한식조리사 과정을 끝내고 어렵지 않게 바로 시험까지 일사천리로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나의 사부작 거림의 본능이 깨어나고 있었다.

바로 주방에서의 사부작 거림.

도마에서 가지런히 재료를 채 써는 작업에서 쾌감을 느꼈고, 오징어 내장을 꺼내고 눈과 입을 빼내어 손질하면서 징그럽다기보다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명으로 쓰일 계란 지단을 찢어지지 않게 부쳐내니 뿌듯함마저 들었다. 




이런 잠재된 본능이 깨어나려고 하는 와중에 나는 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다. 그래서 6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나의 손으로 직접 해먹은 밥보다 친정엄마의 손을 빌어 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캐나다 오지마을(한국 식료품점이 없는 캐나다 중부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졸지에 우리 집 메인 셰프로 거듭나야만 했다.

나와 가족들이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신혼 초에 막 깨어나려고 했던 사부작 거림의 본능을 다시 깨워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로컬 식품들만 즐비한 그로서리 마트에 들어서면 식재료들의 이름부터 모양까지 낯선 것들 뿐이었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 식재료들을 서칭 하면서 그들의 정체에 대해 조사한 다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에 이용했다. 

예를 들어, 얼큰한 육개장이 먹고 싶을 때에는 대파 모양의 부추 맛이 나는 Leek이라는 채소를 대파 대신 넣어주면 맛나다. 

입덧할 때 나의 속을 다스려주던 친정엄마의 쪽파김치가 그리울 때는 Green onions로 파김치를 담글 수 있다. 

김밥 단무지는 Daikon으로 만들 수 있으니 다른 기본 재료 넣고 김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무생채나 깍두기도 가능하다.

남해여행 때 맛보았던 갓김치가 생각날 때는 Bok choi를 사다가 김치 양념에 버무려두면 며칠 후에 알싸한 갓김치의 맛을 낼 수 있다. 

떡순이인 나를 닮은 우리 삼 남매가 사진을 보면서 그림의 떡을 먹고 있으면, Sweet rice로 찹쌀밥을 지어 반죽기에 돌려 떡 반죽을 만들고, 거기에 볶아놓은 콩가루를 묻혀 고소한 인절미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로컬 그로서리에 있는 식재료들을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나의 사부작 거림의 본능은 점차 본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주방에서 먹거리를 만드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주방에서의 사부작 거림은 나의 가장 좋아하는 업이 되었고,

내가 주방에 머물고 있을 때면 가족들은 으레 무언가 맛있는 먹거리를 기대하며 코를 킁킁대곤 한다. 


사부작사부작

주방에서의 사부작 거림이 좋다.

음식으로 추억을 남길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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