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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f Oct 07. 2023

다시 떠난 여행, 치앙마이 그리고 빠이

Partir pour partir


숙소 한편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에 앉아 있는 아침, 여기는 태국 ‘매홍손’ 주에 있는 ‘빠이’라는 지역이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에서 시작해 님만해민과 핑강유역을 거쳐 북쪽  산간지역으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골 마을이다.

6년 만에 떠난 여행길, 모처럼 다양한 언어가 떠다니는 공간에서 지내기 위해  태국 유심으로 교체하고

그동안 비활성화되어 있던 구글맵, 왓츠앱, 라인을 되살리고 현지 이동 앱인 그랩을 깔았다.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라는 치앙마이는 관광국가답게 여행자를 위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었다.

숙소나 식당에서 접한 사람들의 과하지 않은 친절함도 좋았고, 우버와 같은 그랩 택시 운전자들도,

새벽 재래시장에서 본 상인들과 장을 보러 온 현지인들의 모습도 그랬다.

탁발하시는 비구니 스님 두 분에게 시장에서 산 옥수수를 공양하고 간단한 태국어 법문을 듣기도 했다.


시장과 사원이 도심에 공존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다. 어린 스님들이 사원에서 수업을 듣고 나와 편의점으로 걸어가는 여느 청소년과 같은 모습도.

불교와 왕정제가 만난 지점을 보여주는 듯한 화려한 금박 장식의 사원들이 대처에 존재하고 사원이 여행자를 위한 마켓 장소가 되기도 하는 세속불교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는 되었다. 그러나 적요한 산사 나라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사찰이 가진 기표와 기의가 내내 마찰음을 내고 있는 듯했다.

어디나 보이는 불상이 자신을 반추하는 기제인 듯 늘 합장하는 그들의 인사는 형식이 태도가 되어 일상을 다정하게 견디는 힘이 된 것처럼 보였다.

부처는 거리에 사람들 사이에 함께  살고 있었다.


학식을 먹어보자며 간 치앙마이대학에서 한참을 놀았다. 산자락에 자리한 넓고 깨끗한 캠퍼스가 인상적이었고 대학생들이 소년처럼 풋풋했다.

언제가 본 태국영화 ‘배드 지니어스’가 생각났다. 대학입시 열풍과 부작용을 스릴러처럼 다룬 영화로  그 영화 속 고등학생들이 마치 치앙마이 대학에 있는 학생들처럼 보였다.

저녁에 사원과 야경을 보는 투어 프로그램에 갔는데, 이십 대 초반의 청년 가이드는 여행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태국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다며

수줍게 얘기했다. 살짝 엿본 치앙마이 청년들은 액티비스트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 내향적 평화주의자와 같은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옛 제국 이름 ‘란나’처럼 치앙마이는 매력적인 곳이었지만, 붐비는 거리와 소음을 떠나고 싶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그래서 좀 더 북쪽 끝으로 760여 개의 굽이굽이 길을 돌아 작은 마을 ‘빠이’로 갔다. 지도를 보니 미얀마와 라오스가 옆에 있었다.

타 지역으로 가는 대중교통수단인 10인승 미니밴 안에서 앞서가는 오토바이 여행자들을 많이 보았다.

오토바이 면허를 따고 다시 올까 하는 생각이 차오른 것도 그때였던 것 같다.


빠이도 이미 여행자 거리가 상품화되어 있긴 하지만  작은 마을이라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시골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배낭족들이 멀리 산에서 캠핑을 하고 내려와

여행자거리에서 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럽기도 하고 야영의 기억이 소환되면서  재개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슬렁거리는 유러피안들이 유독 많고 부지런히 다니는 한국인들도 가끔 보이고 소란한 중국인들도 보이는 작은 마을 빠이,

면단위 정도되는 마을이 이렇게 이방인들로 북적거리는 게 좋은 건지 투어리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자전거도 타고 수영도 하고 길거리  저렴한 음식의 질에 감탄하기도 하며 그렇게 ‘투어리스트’로 며칠을 보냈다.


창문 너머에 푸른 잎들이 나른하게 흔들거리고 실링팬이 살랑살랑 회전하는 작은 서가 앞 책상은 낯선 나라를 잠시 잊을 만큼 평온하다.

일상의 것들이다.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욕망과 다른 곳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있고 싶은 것은 모순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금 쉬는 숨, 지금 바라보는 것들, 말들 그리고 글들 그것만으로 이 순간을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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