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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by 이효 시인



혜화역 2번 출구에서 2시 30분에 만나자

친구 시인과 함께 차 한잔을 마시고 한국시극협회에서 6개월간 준비해서 올린

시극을 보러 갔다.

안기풍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어릴 적에 영화를 보면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고, 음악을 들으면 가수가 되고 싶었고, 감동을 주는 시를 읽을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단다.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에는 먹고살기 위해 꿈을 접었고, 육십 대가 되어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단다. 안기풍 할아버지는 오늘 하얀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자화상이란 시가 흘러나온다.



자화상 / 안기풍


거울에 비친 나를 본다


주름진 얼굴에 검버섯

검은 머리카락은

흰 머리카락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는

거울 속으로 모두 숨어버렸다


파스가 친구가 되고

주름진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이

누가 봐도 할아버지다


찾고 싶은 젊은 청춘

욕심이라 해도 좋다


살아온 날보다 남은 인생이 짧다

거울 속 내 자화상을 웃게 하고 싶다




낭송이 끝나자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기풍 할아버지의 눈에는 눈물 방울이 촉촉하게 맺혀있었다. 유명한 연예인이 받는 써포라이트는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안기풍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그는 백발의 시인이자 연극 무대의 당당한 주인공이 되었다. 노 시인의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쳐주고 친구랑 함께 혜화역

2번 출구 갔다

내일은 또 우리네 인생이 어떤 열차를 타고 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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