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는 나를 만든다
내 세포를 이루는 70% 이상은 으깨진 달걀과 불어 터진 라면조각일 것이다. 어릴 적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다. 현재는 게 중 몇 퍼센트가 마라탕 고추기름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알아주는 달걀성애자다. 그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와 동생은, 당연하다는 듯 닥치는 대로 달걀을 먹는 어린이로 자랐다. 지금도 달걀 한 판을 사두면 일주일도 채 안되어 동이 나는데, 과거에는 더 심각했었다. 부녀가 달걀 하나로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는가? 매일 아침이면 우린 달걀 다섯 개가 들어간 계란찜 앞에서 38선을 그었다. 늦잠을 자는 날이면 엄마는 일부러 계란요리를 하고 내 방 문을 활짝 열어두었는데, 아빠가 다 먹어버릴까 봐 냄새만 킁킁 맡고는 바로 침대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꽤 오랫동안 우리 집은 그런 방식으로 늦잠 자는 사람을 자발적으로 일어나게 했다.
라면을 좋아하는 것은 할아버지를 닮았다. 그는 대단한 안성탕면 사랑꾼이었는데, 아빠는 어릴 적 안성탕면 말고는 다른 라면은 먹어보지도 못했단다. 지금도 할아버지 댁 찬장을 열면 안성탕면 5개입이 세 봉지 정도 나오곤 한다. 할머니가 잠시 회출하신 틈을 타 몰래몰래 줄어드는 주황봉지. 그런 건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아닌데 본능처럼 닮는다.
한때 GS25에 '면왕 500'이라는 작은 컵라면을 팔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가진 돈이 얼마 없는 나이에 500원만 주고도 라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영어학원이 끝나고 셔틀버스를 타기까지 잠깐 뜬 10분을 미친 듯이 편의점으로 뛰어가 뚝딱 비우고 나왔다. 따뜻해진 배를 통통 두드리며 엄마는 알지 못하는 나의 '1일 1라면' 비밀이 늘어가는 일은 굉장히 쏠쏠한 재미였다. 다만 혹시 내가 훗날 어떤 지병을 남들보다 일찍 얻게 된다면, 달리는 셔틀버스 맨 뒷자리에서까지 라면을 먹던 그때의 몇 년 때문일 것이 분명하다. 정말 매일 먹었으니까•••
지금은 마라탕까지 합쳐져 끊을 수 없는 도파민 3대장이 완성되었다. 언젠가 애플 스토어에서 게임 아이디를 정하라길래,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좋아하는 음식을 나열해 버렸다. 그날부로 모바일 게임에서 내 이름은 '계란라면마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