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서 00 해야지, 하고선 이뤄낸 것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물레다.
한 달에 용돈 25만원으로 살아야 하는 대학생에게 수업은 한 달 용돈 전체를 부어야 하는 큰돈이었다. 그렇다고 토익같이 당장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생계가 어려워진 집이 가장 먼저 포기한다는 예체능 학원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결국엔 계속 미룰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를 계속 찾았다. 생활에 여유가 생길 때, 진짜 하고 싶어 질 때, 사실은 그냥 돈이 있을 때.
잠시지만 돈벌이를 시작한 지 3개월째. 불현듯 여기저기 주절대고 다녔던 나의 잊혀진 버킷리스트가 떠올랐다. 이 돈이면 뭘 할 수 있으려나···. 책을 탑만큼 살 수도 있고 계절 맞는 옷을 주문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짧은 여행을 갈 수도 있는데. 그렇지만 결국 내가 부어둔 말에 쏟아보기로 했다. 내 세상 가장 큰 비용의 취미가 시작됐다.
어떤 취미는 나와 정반대에 서 있을 때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천천히 일정한 힘을 유지하는 것. 그게 물레의 핵심이었는데,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못하는 것이다. 힘 좀 빼고 살으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들었다. 능력을 떠나서 삶의 태도의 영역이다. 상사조차 덜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느니, 그건 아마 상당 부분 사실일 것이다. 술이 좋았던 건 늘 위축된 말과 어깨가 활짝 피어지기 때문이었다. 덜 눈치 봐도 되고, 덜 잘해도 되고, 덜 부담스러워도 되는. 그런 상태를 일상에서는 거의 가져보지 못했다. 타투처럼 새겨진 나의 과한 완벽주의는 노오력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래서 늘 다른 힘을 빌렸다.
물레를 할 때는 자꾸 나보고 천천히, 힘을 빼야 예쁘게 빚어진단다. 힐링하려고 시작했는데도 '잘'만들고 싶어서 과하게 힘을 주다 회오리 모양으로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 더 천천히 하셔야 돼요.
어렵다. 해본 적이 없는 걸 하려니 당연하긴 한데. 일정하게 손바닥을 스치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기다릴 줄도 알아야 했고 막판에 서두르거나 욕심을 내지도 않아야 했다. 다만 그 팔뚝만도 안 되는 진흙이 세세하게 변화해서, 내 힘이 보이는 점이 좋았다. 이만큼 삶에 힘을 쥐고 사는구나, 이 정도는 되어야 힘을 뺐다는 거구나. 물레 수업을 가는 날이면 마음이 놓였다. 삶이 지칠 때도 그런 건 지치지 않았다. 손끝이 더 이상 나뭇가지마냥 꼿꼿하지 않았다.
호기롭게 시작한 물레수업은 '돈을 '더' 벌게 되면'이라는 새로운 말로 자위되며 다시 사라졌다. 대신 집 앞에 저렴한 요가를 시작했는데,
거기서도 힘 좀 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