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서 Sep 22. 2024

습관성 환상 품기

  가끔 모든 일의 시작 동기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각자의 다른 시작을 만든 단어들을.

  어려서부터 항상 이름에 환상을 품곤 했다. ~단, ~회, ~장, ~부 같은 개인이나 단체명에 혹했고 특별히 여럿을 대표하는 자리라면 더 그랬다. 이름과 직감에 생활을 바치는 사람이면서, 미리 찾아보면 되는데도 기어코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런 어렴풋하고 확실한 동기로 살아가는 나다.


  대학에 와서도 이름에 대한 이유 모를 갈증은 계속됐는데, 새내기가 되자마자 호기롭게 지원했던 학생회가 그랬다. 학생회 회의가 있다, 회장님이 어쨌고, 부서가 어떻고 같은 언어로 시작하는 말을 내뱉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 좀 멋있잖아. 뭘 하는지는 몰라도 이름이 주는 어렴풋한 동경의 세계가 있었다. 그 직감을 믿기로 하고 무턱대고 지원서를 냈다. 경력 따위야 텅텅 비어있어도 일단 배우면 그만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 면접 일정을 확인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싶은지 나도 모르겠어서. “왠지 뽀대 납니다.”라고 말할 순 없지 않나. 나도 납득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말이 필요해서 고등학교 시절의 날 담보로 이용했다.

  10~15분 남짓의 짧은 면접을 마치고, 며칠 뒤 ‘지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쉽지만, …’으로 시작하는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당시엔 박탈감 비슷한 것을 느꼈던 것 같다.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 적도 없으나 한편으론 그동안 거절받은 경험이 많이 없어 당연히 하게 될 거란 생각도 했다. 불합격 통보를 받으니 기분이 묘해졌다. 그럼 대체 얼마나 알고 있어야 했지. 뭘 말했어야 했나. 우물쭈물했던 스스로의 얼굴이 떠오르면서도 거기서 얼마나 더 잘해야 했는지를 알 수 없었다. 한동안 다른 학교 학생회를 하는 친구까지 부러워했다.

  사실은 그 이름이 갖고 싶었던 거였다.


  나는 학과도 이름으로 갈 뻔했다. 중국 대학 입시를 준비할 당시, 유학생에게 추천하는 학과는 한정적이었다. 대학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학과 설명도 충분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선배들의 경험을 물어물어 알게 되는 식이었다. 그때 심취했던 이름은 ‘국제관계’였다. 어릴 적부터 ‘국제’가 들어간 단어는 모두 멋있게 느껴져서였다. 국제기구, 국제단체, 국제산업, 국제업무, 국제사회… 나는 또 구체적인 이유를 차치하고 감각으로 로망을 익혔다. 하지만 알음알음 듣게 된 정보로 한참 인터넷 서칭을 했을 땐 그곳이 생각보다 내가 짐작한 느낌과는 멀다는 걸 알게 됐다. 4년을 이름 하나로 살아버릴 뻔한 것이다. 물론 해당 학과와 전공자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만큼 나의 습관성 환상 품기가 얼마나 극심한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한동안은 그런 충동적이고 본능만 강한 성격에 넌더리가 났다. 설명할 수 있는 확실함이 담긴 이유로 일상을 설명하고 싶었다. 확신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런 상상으로 무작정 시작했던 것이 열 트럭을 넘어선다. ’무턱 대다‘는 표현이 될 수도 있지만, 삶에는 무턱대지 못해서 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하기에. 그래서 차라리 알지 못함을 사랑한다. 이름만 보고, 분위기만 떠올리고, 감각만 익히고 시작했던 일들이 삶에 집을 이뤘다. 이름으로 기대했다가 후회하고 우회하는 일들도 생겼지만 해보기 전엔 분명 알 수 없었다.


  이름에 늘 궁해 있는 나는 아직도 습관적으로 언저리에 있다. 공간도, 모임도 다 그런 식으로 시작했다. 분위기에 마음이 동하고 이름을 말하는 동안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름은 행위와 가치관을 설명하고 앞으로 펼쳐질 일상을 가늠하게 하는 지표가 돼서, 허상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재이기도 하다. 실속 없는 사람이라 질책했지만, 요즘은 부쩍 계산하는 내 모습이 어색하다. 미리 확인하고, 위험을 최소화하다 보니 실행까지 가는 덴 힘에 부친다. 복잡한 생각은 복잡한 상심을 낳고, 상심은 포기와 가까이 있다. 여러 번이고 고민하다 놓쳤던 많은 이름들을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대책 없는 본인을 질책하는 듯한 말이 난무해도, 사실은 누구보다 이 감각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꾸준하면 재능이 된다는데 직감도 꾸준하면 능력이 되지 않을까, 또 다른 직감을 들고. 또 다른 이름과 감각을 손에 쥐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