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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Sep 14. 2024

떠난 조각들에게

  마음을 붙잡고 글을 다시 쓰기까지 참 오래고 고된 시간이 걸렸다. 4일간 모임 수백 가지의 감정을 서술하기엔 그 깊이가 너무 방대했다. 어떤 날은 분개했고, 어떤 날은 절망했으며, 어떤 날은 자책했고, 또 어떤 날은 오로지 슬퍼했으니. 하지만 결국 써야만 하고, 그것이 나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애도다.


  누군가는 휩쓸렸고, 누군가는 깔렸다. 누군가는 살리려 했고, 누군가는 조롱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무심했다. 죽은 이들은 또 한 번 죽었다. 강한 압력으로, 이리저리 들이대는 카메라로, 보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왜 그들은 두 번 죽어야만 했나. 어떤 죄가 안타까운 죽음에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할 정도로 무거웠나. 수많은 절규를 본 지난 며칠은 내게도 죽을 만큼 고된 밤이었다. 많은 의문에 역정을 느꼈지만 무엇도 이 일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에 무력을 얻었다.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누구도 들어줄 수 없는 시끄러운 음악 사이에서 가쁜 숨을 내쉬어야 했던 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이런 죽음은 삼풍백화점이 끝이길 바랐고, 성수대교가 끝이길 바랐고, 세월호가 끝이길 바랐지만 이제는 이태원이 끝이길 바라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늘 심장이 뚫어뻥으로 뽑히듯 아프다.


  우리가 붙잡아야만 했던, 그러나 결국 놓친 수많은 조각들을 떠올린다. 완전함을 잃은 남은 조각들은 이제 무얼 해야 할까. 그 답을 찾지 못해 오늘도 빈자리를 서성인다.


.

  합동 분향소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더 행복했어야 하는 꽃들이 분분한 낙화가 되어 떨어졌다.


  벤치에 앉아 쓴 날숨과 눈물을 뱉어냈다. 외쳤지만 살 수 없었던 사람들. 나는 그 인생들이 너무 가혹해 번번이 울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가 겹쳐 보였다. 잔혹했던 날들이 자꾸만 포개졌다.


  광장에 앉아 이따금 분향소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애도를 수십 번씩 거쳤다.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찾아가듯, 헤아릴 새도 없이 그 일을 반복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는 촘촘하다가도 순식간에 아득해지는 것이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다 인사했으니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계속 기억할 테니 잊힐까 걱정하는 건 더 하지 마시라고. 무겁게 자리를 빠져나왔다.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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