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겨울이다!'가 느껴지던 주말, 그 어느 때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방으로 향했다. 창작자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자리가 있었다. 아직 유형의 창작물이 없던 나는 그 좋은 기회를 기대하면서도 걱정했다. 작가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작가는 '책을 낸 사람'이니까.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작가지망생이었다.
나와 내 글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얼마나 글에 진심이고 고민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기로 했다. 2주 전부터 노트에 어떻게 창작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느 플랫폼에 어떤 글을 연재하고 있는지를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제목까지 적고 보니 어느새 수십 편이 모인 글기록 아카이브가 되었다.
몇 주 사이에 자식이 되어버린 노트를 껴안고 발걸음 하는 동안, 이걸 쓰기 위해 공들였던 시간과 저릿한 팔이 자꾸만 떠올라 쉽게 보내주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손수 만든 내 첫 번째 창작물이니까. 그렇지만 이걸 세상에 내보내지 않으면 평생을 내 방 안에 썩어있을 것밖에 안 되기에... 이왕 소중한 거 멀리멀리 보내버리는 게 더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사실 만족스러운 자리는 아니었다. 나 말고도 오랜 시간 쌓인 결과물을 가진 사람들은 넘쳤다. 모두가 이 기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열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내가 자꾸만 부끄럽고 작아지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는 사람인지, 수백 번을 속에서 검열하고 추가했다가 다시 삭제하고. 결국엔 아무 말도 못 하고 훌륭한 사람들 이야기나 열심히 듣다 나온 꼴이었다.
자꾸 '자격'을 따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나를 부끄러워하는지에 대해 종일 생각했다. 진짜 부끄러웠던 건 겸손한 척 뒤로 빼는 태도였다. 겸손은 물론 중요하지만, 나는 늘 지나쳐서 문제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나는 익지도 않았으면서 고개를 더 아래로 숙였다. 어느 정도는 좋은 칭찬으로 받고 넘겨도 될 텐데, 열에 아홉은 아니다, 나 못한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예의라고 생각하면서 뱉은 말이 자꾸만 자신을 부끄러운 사람으로 만들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부끄러웠구나.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산다는 뜻인데, 나는 정말 그랬다. 내 자랑하기를 그렇게 싫어했다. 자랑할 껀덕지도 없을뿐더러, 말할 것이 생겨도 입을 닫았다. 남들 다 나만큼은, 아니 그보다도 잘하고 사는데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그러나 과도한 겸손과 예의는 결국 자기부정으로 돌아온다. 내가 하는 말은 내가 제일 먼저, 가까이서 듣지 않나. 아니라고 말할수록, 못한다고 믿을수록 나는 진짜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살아간다. 그 증거물 1로 나를 제출한다. 진짜 그렇게 살았다. 해낸 것,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줄기차게 믿어왔다. 노력 중이지만 여전히 어렵다, 나를 칭찬한다는 건.
그날 나는 자기 피알은 잃었지만 나와는 화해했다. 부끄럽다고만 생각했던 '나'라는 아픈 손가락에게 처음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수십 년이 지나 화해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는 아직 어색하고 이상하다. 말만 하려고 하면 솟구쳐 오르는 과도한 겸손이 나를 찌르기도 하지만 계속 공생할 이 사람이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할 사람이란 걸 이젠 안다.
아주 조금씩, 우리는 그렇게 계속 흐를 것이다. 함께라는 이름으로 엮이어. 세상을 마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