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슬슬 보드라움보다 까슬함에 가까워질 때마다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 엄마가 혼자 때를 미는 동안 나는 보통 뜨뜻미지근한 이벤트탕(여기서 '이벤트'는 과연 무슨 뜻일까)에서 개헤엄에 가까운 수영을 하며 놀았고, 이제 내 차례라는 엄마의 말을 일부러 무시하다가 샤워기 앞으로 끌려가곤 했다. 사포같이 아픈 때밀이를 왜 온몸에 문대는 걸까, 생각하면서 엄살이란 엄살은 다 부렸던 어린 나. 그리고 아무리 박박 밀어도 늘 더 세게 밀어봐, 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이런 걸 참아내는 게 어른이구나 생각했던 목욕탕의 옛 풍경.
오늘은 처음으로 엄마를 씻겨주는 날이었다. 얼마 전 퇴근하고 내려가는 지하철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엄마의 복숭아뼈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깁스와 목발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 때문에 집안일은 전부 나와 아빠가 분담하게 되었고, 엄마의 일과 가사노동의 무게가 얼마나 중했는지를 실감 중이다.
며칠 전 엄마가 다친 쪽 다리를 가누지 못해서 샤워를 하다 뒤로 넘어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엄마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손으로 바닥을 짚을 새가 없었더라면. 내색은 안 했지만 가슴이 덜컹했다. 내 일에만 바빠 나의 삶에 엄마를 위한 자리는 잘 내주지 않아서였을까. 무거워진 마음은 계속 계속 무거워졌다.
친한 동생을 만나고 돌아와 이제 막 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글을 정리하려고 할 때, 낮은 의자 좀 가져와달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다, 지난번에 넘어질 뻔했다 그랬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신박하던 글감은 기억 속에 완전히 잊혀 버렸지만, 그게 가족의 안전보다 중요한 건 아니지 않겠느냐며. 결국 의자나 가져다주려다 엄마를 직접 씻겨주고 등까지 밀어주는 꽤 멋진 효녀가 되었다. 머리까지 말려주었으니, 생각보다 더 괜찮은 딸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젊어 보이고 젊게 사는 엄마에게 나이 듦을 체감한 적은 없었다. 엄마는 아직도 나보다 튼튼하고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다친 발을 가누지 못해 내 팔과 다리에 몸을 기댄 엄마를 보면서 언젠가는 내가 엄마보다 월등히 강해지는 때가 오리라는 당연한 진리를 체감했다. 그 체감은 조금 시큰해서, 엄마의 등을 더 세게 벅벅 밀었다. 그렇게 때밀이를 당하던 어린아이에서 엄마의 몸을 밀어주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고 그렇게 커간다는 건, 누군가는 점점 작아지는 것이니까. 그렇게 바라본 엄마의 몸은 주름이 조금 늘어난 것도, 흰머리가 더 많아진 것도 같았다.
당연하게 빚져 왔던 내리사랑의 채무를 이제야 아주 조금씩 갚아가는 것 같다. 아마 영원히 갚아도 빚은 남아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