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가 스위스로 여행을 간 16일간, 짧은 혼자살이를 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이렇게 오래 혼자가 되어본 적은 없었다. 어떤 말을 꺼내도 답이 돌아오지 않는 홀로의 시간은 무섭고 유익했다.
혼삶 초반에는 정적이 찾아오는 밤을 한순간도 견디지 못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야만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늘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글을 썼다. 자지러지게 웃는 소리가 많은 예능일수록 안심이 됐다. 작은 소음을 신경 쓰지 않기 위해 시끄럽게 지냈다. 쿵쿵 소리나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밖에서 나는 작은 소음은 방음이 되지 않는 탓에 수없이 깨다 잠들었던 상해의 밤을 은은하게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 전혀 인식하지 않았던 내 집에도 계속 문이 잘 잠겼는지를 확인했다. 집에 돌아가는 저녁에는 계속 주변을 둘러보면서 '누군가 나를 계속 쫓아올 때는 이 우산을 들어...'같은 안전 매뉴얼을 되외었다. 쓰레기장보다 더 더러운 집 안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모르는 사람의 고함소리에 그대로 노출되어야 했을 때. 상해에서 도망 나온 내 선택에는 조금도 후회가 없지만, 그 순간순간의 공포는 모든 출발을 겁나게 했다. 겁이 나 어떤 시도도 해볼 수 없겠다는 생각은 나를 갉아먹었다. 겁내지 않는 건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자랑이었는데.
밤이 이유 없이 무서워질 때마다 음식을 손수 해 먹었다. 마트에서 재료를 사 오고, 요리 소리를 배경음 삼아 긴장을 내렸다. 우리는 계속 일어나지 않을 불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거라고, 그럼 어떤 삶도 살 수 없다는 말을 무언가를 볶고 썰면서 위안했다. 어느 때보다 멋들어지게 음식을 차리고 입에 꼭꼭 씹어 넣으면서 조금씩 순간을 환기하고, 밥 사진들은 하루를 잘 버틴 증거처럼 갤러리에 남았다.
그러면서도 삼 일을 빼고 전부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전부 제각각이었지만 우선 외롭다 싶으면 나가곤 했다. 대부분의 암울은 은둔하기 시작할 때 더 커져가고 그 반경이 내 생활지일수록 일상에 쉽게 담기기 때문에. 그래서 울적하기 짝이 없던 어떤 날은 다이소에 들러 맘에 드는 그릇을 사 오고, 어떤 날은 봄 공기를 맡으러 집 앞을 산책했다. 어느 날은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일단 나가보면 모호했던 기분이 확실해지는 것을 느꼈다.
혼자 산 지 12일 차.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마무리했고, 빨리 나가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카페로 슬렁슬렁 걸어갔고, 미루고 미루던 책을 다 읽었고, 원하던 글을 쓰고.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오늘의 밤은 날카롭지 않았다. 혼자 외롭게 있다는 감각이 사라졌다. 내가 몇 인 가구로 살고 있는지 자각할 필요조차 못 느낀 그런 저녁. 책상에 앉아 하루를 다시 돌아봤다. 돌아보면 단순했다고 생각했던 하루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내 삶의 대부분은 퀄리티 낮은 잠과 부담 가득한 일상, 단단히 박힌 시간 강박과 업무 스트레스로 시작되고 끝났으니까.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아서, 그래서 편안했던 것 같다. 늘 일정량의 암울이 섞이던 일기에 오늘 저녁은 무섭지 않다는 말을 적었다.
2주 남짓의 혼자살이를 마무리하며, 그간 삶의 유연함을 외면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려움과 맞닿아보고 이 모습을 인정하고 나서야, 언제든 또 다른 혼삶으로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땐 자유를 꿈꾸던 어린이었으나, 지금은 자유로운 사람보다 자주 도망 다닐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해방이다!"를 많이 외치고 싶다.
자유와 해방은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 자유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상태라는 연속성을 지녔지만, 해방은 구석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순간적으로 벗어나는 짧은 지속력을 가졌다. 차라리 짧고 잦은 자유를 얻고 싶다는 좀 더 클지도 모르는 욕심을 품은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해내야 하는 것과 지켜내고 싶은 것 사이에서는 늘 엄청난 충동이 인다.
다만 혼자의 삶으로 깨달은 것은,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해선 모두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점. 지독한 외로움은 더 확장되기 전에 빠져나오는 게 맞으나, 적당한 외로움 속에서 사색하고 무언가를 자각할 때 '-하는 자유' 혹은 '-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을 찾을 수 있다.
나를 위한 좋은 한 상을 차리고, 돗자리 하나 들고나가 강가에서 시를 읽고, 보들보들한 잠옷을 입고 깊은 밤에 빠지는 것. 그런 작고 사소한 것에 기뻐하는 나와 유연한 마음이 있을 때 삶은 결국 해방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