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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Sep 25. 2024

자라면서 본 풍경은 서식지가 된다

  어렸을 때 본 엄마는 늘 분주한 사람이었다.

  재봉틀로 옷을 만들고, 식물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고, 베이킹을 하고, 취향의 가구나 그릇을 들이던. 심지어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 구조를 바꾸곤 했다. 큰 가구들이 동서남북부터 대각선까지 방향을 트는 것을 볼 때마다 대체 저걸 혼자 어떻게 옮기는지 궁금해했다. 오랜 친구 정은은 바뀐 우리 집 풍경을 잘 알아채는 사람인데, 거실로 들어설 때마다 정은이 하던 말은 늘 같았다.


  - 구조가 또 바뀌었네? 이모 언제 옮기셨대?


  그 힘이 늘 궁금했다. 엄마도 일을 하던 사람이면서. 하교한 나와 남동생 매끼 다른 밥을 먹이던 사람이면서. 언제 그렇게 만들고 가꾸고 옮기고 치울까.

커가는 과정에서는 그런 걸 ‘굳이’ 하냐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굳이 결린 어깨와 아픈 허리 두들겨 가면서까지 해야 할까. 지금 생각하면 한바탕 짐 옮기기를 마치고 침대에 풀썩 쓰러져있는 엄마가 못내 안쓰러워 보였던 것 같다. 안 하면 안 힘든 건데.


  참 이상한 건 이젠 내가 그 일을 넘겨받았다는 것이다. (아, 엄마는 아직도 비슷하게 지낸다. 요즘은 캠핑에 빠져있다.) 2평이나 될까 하는 방에 어떻게든 다른 방향으로 침대를 욱여넣고 있는 내 모습에 엄마가 겹쳐 보였다. 한때는 번거롭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일을, 지금은 내가 일기를 쓰고 cd를 모으고 오늘의 집을 구경하고 그릇이나 책 따위를 대거 작은 방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빈티지와 스타일은 조금 다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제2의 김혜영’이 들어온 것처럼 나는 내 방에서, 그녀는 나머지 공간에서 각자의 세계를 일구는 중이다. 점차 주인과 한 몸이 되어가는 내 방을 보면서 이게 내가 봐온 세계의 재구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힘은 노동의 형태가 아니라 환기의 과정이며 사용하면서 해소되는 것이었다는 걸 이젠 안다. 지금도 이토록 무용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지 않나. 글 쓰는 힘의 원천은 그런 것 같다. 환기하고 해소하는 과정. 잘 사는 것도 비슷하다.


  지금 나의 서식지는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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