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서 Dec 10. 2022

나는 나를 얼마나 부끄러워했나

'이제 진짜 겨울이다!'가 느껴지던 주말, 그 어느 때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방에 향했다. 책을 사러 가는 자리가 아니어서였을까. 창작자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한마디로 책방지기와 서로에게 '어필'하는 기회의 자리가 있었다. 아직 손에 쥘 수 있는 유형의 창작물이 없는 나는 그날을 기대하면서도 걱정했다. 작가라고 하지만 통상적으로 작가는 '책을 낸 사람'이란 인식이 강하니까. 그런 관점으로 바라보면 나는 그냥 앳되어 보이는 대학생 정도였다.


어떻게 나라는 사람과 내 글을 보여줄 수 있을까 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작가이니만큼 유형의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글에 진심이고, 얼마나 고민하며 살아가는지를 꼭 보여줘야 했다. 2주 전쯤부터 무지 노트에 어떻게 작가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느 플랫폼에 어떤 형태의 글들을 연재하고 있는지를 일일이 써 내려갔다. 어느새 수십 편이 되어있는 글 제목들까지 저릿 거리는 팔목을 잡고 모두 적었다. 글 기록의 아카이브가 된 셈이다. 어느새 노트의 대부분이 채워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걸 체감했다. 나는 얼마를 써야 이젠 됐다고 느끼려던 걸까. 작가가 되겠다면서 글을 안 쓴다고 그렇게 자기혐오를 넘나들던 시간들 뿐이었는데. 나는 내가 얼마나 싫었던 걸까. 너무 미안했다. 누구도 위로해주지 않던 나에게.


몇 주 사이에 자식 같은 아이가 된 노트를 껴안고 발길 하는 동안, 이걸 쓰기 위해 공들였던 시간과 팔이 자꾸만 떠올라 쉽게 내어드리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어쩌면 손수 만든 내 첫 번째 창작물이니까. 그런 창작물을 보낸다는 건 생각보다 간단한 마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걸 세상에 내보내지 않으면 평생을 내 방에 썩힐 것밖에 안되기에.. 이왕 소중한 거 멀리 날아가버려라, 하고 열심히 자랑했다. 사실은 그런 나를 자랑하고 싶었던 거지만.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자리는 아니었다. 나 말고도 모두가 오랜 시간 쌓인 결과물들을 가지고 있었고, 스토리도 무궁무진했다. 모두들 이 기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열정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내가 자꾸만 부끄럽고 작아졌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되는 사람인지, 이 글에 대해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할지 수백 번을 속에서 검열하고 빼내고 추가했다가 다시 삭제하고. 결국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열심히 듣다 나온 느낌이었다.


나는 종일 내가 얼마나 나를 부끄러워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내 부끄러움은 '겸손'이었다. 인간관계 안에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태도. 남은 괜찮아도, 나는 하면 안 되는 금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너무 정석대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던 것 같다. '이런 말 하면 너무 자랑처럼 들릴까?'를 바탕으로 "에이, 아니야."를 입에 가격표처럼 달랑달랑 붙이고 다녔다. 어느 정도는 그냥 받아들이고 넘겨도 될 텐데, 열 번 중 아홉 번은 아니다, 나 못한다 로 끝낸 말들. 예의라고 생각하며 내뱉은 언어가 스스로를 자꾸 부끄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걸 그날 돌아가는 길에 처음 알았다. 나는 내가 그동안 부끄러웠구나. 자식에게서 "엄마 아빠랑 있는 거 부끄러워."를 들은 부모의 충격처럼 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었다.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자신을 만족하지 못하고 산다는 뜻인데, 나는 정말 그랬다. 내 자랑 하기를 그렇게 싫어했다. 자랑할 것도 없었고, 말할 거리가 귀퉁이만큼 생겨도 입을 닫았다. 남들 다 나보다 잘하고 사는데 그게 뭔 자랑거리라고. 그게 이유였다.

하지만 과도한 겸손과 예의의 끝은 결국 자기부정으로 돌아온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 크게 듣기에 아니라고 말할수록, 못한다고 믿을수록 나는 진짜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산다. 그 증거물 1로 나를 제출한다. 진짜 그렇게 살았다. 해낸 것 하나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줄기차게 믿어오던 사람. 아직도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은 아쉬운 모습이다.


그날 나는 자기 피알은 잃었지만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화해했다. 종일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아픈 손가락에게 처음으로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수십 년이 지나 화해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우리는 아직도 어색하고 이상하다. 누구와 얘기만 하려고 하면 솟구쳐 오르는 과도한 겸손이 가끔 나를 콕콕 찌르기도 하지만 계속 공생하며 살아갈 나를 가장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나라는 걸 이젠 안다.


아주 조금이지만 우린 계속 그렇게 흐를 것이다. 함께라는 이름으로 엮이어.

작가의 이전글 빈자리를 서성이며 찾는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