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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Nov 30. 2022

빈자리를 서성이며 찾는 슬픔

나는 아픔을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슬픈 일인 줄 알았다. 이를 테면 오늘 오후 유달리 외로움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것 같다거나 갑자기 훅 스며든 무기력에 기지개 한번 필 수 없을 때 같은. 수많은 시간을 그렇게 알아차린 크고 작은 아픔들에 물들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익숙함은, 그만큼 무섭다. 


하지만 정작 제일 큰 슬픔은 내가 아픈지도 모르고 있다가 불현듯 찾아오는 그런 종류였다. 비로소 강해졌다고 느낄 때, 그래도 살만 하다고 기뻐할 때 남모르게 차오르던 아픔의 그림자들. 그런 그림자들이 존재한다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곳에서 유달리 눈물을 자주 흘린다. 아니, 이제야 조금씩 자유롭게 흘리고 있다. 굳게 잠근 내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 일정한 긴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에게는 울 자유가 주어지는 그곳도 그저 외부였다. '그래도 괜찮아요.'를 달고 살던 곳. 그리고 거의 매 문장마다 더해지는 이야기의 자기 검열까지. 그러지 않아도 될 곳에서도 나는 항상 당신의 쉬운 판단과 시선이 생겨날까 조마조마해했다. 목 끝부터 머리끝까지 이어지는 두통이 항상 몸을 감싸는 이유도 그런 긴장감 탓일 테다.


마음이 참을 수 없이 두껍게 층층이 쌓였던 지난주부터 나는 그곳에 앉을 때마다 울었다. 지난주에는 그냥 울어버렸고, 오늘은 참으려 노력했으나 결국 져버렸다. 일주일의 힘듬을 마음 어딘가에 한 겹씩 쌓아두고 한 번에 털어버리는 형태가 됐다. 그땐 어른이 된 것 같았지만, 사실 어른이 되는 법을 잘못 배운 것밖에 안된다. 내 세계에서 느꼈던 가장 높은 슬픔을 자꾸만 초월하는 행위가 반복될 뿐이니까. 


당신은 내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쓰러졌을 거라고 했다. 글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러니 계속 써서 꾸준하게 살 구멍을 만들어주라고 덧붙였다. 문득 '살기 위해 글을 쓴다'고 답했던 갈색 종이가 떠올랐다. 내가 서술한 글의 용도는 그 설명에 딱 어울렸다. 그치만 자꾸 눈물이 났다. 내게 기댈 수 있는 게 얼마 없다는 사실이 계속 떠올랐다. 


슬픔을 그 감정 그대로 느끼는 것, 사실 기적처럼 선물 같은 일이었음을 지나간 빈자리에 서성이며 나는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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