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을 유달리 싫어하는 나는 추운 계절이 다가올수록 유독 더 집안에 숨는다. 사실 피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겨울은 많이 껴입으면 되지 않냐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스키바지를 입고 다닐 순 없잖아요. 추위를 피하는 옷은 결국 한계가 있고, 최선은 최대한 따뜻한 곳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바깥에서 몸을 웅크리기보다는 안에서 편하게 따뜻함을 누리는 쪽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칩거 생활은 생각을 단절시킨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몸을 움직이며 떠올리는 것이 많다는 걸 매해 겨울마다 느끼곤 한다. 여름이라면 옷 하나 걸치고 시원한 커피 한 잔 들고 몸만 밖으로 보내면 되는데, 겨울엔 이것저것 껴입고(이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잔뜩 경직된 몸으로 전장을 향하듯 가득찬 다짐으로 문을 연다. 추위를 과하게 싫어하는 사람에게 겨울은 온 몸에 긴장을 필요로 하는 계절일 수밖에 없고, 걸으면서 떠올랐던 많은 글감을 자연스레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저절로 늘어난다.
그렇게 계속 '밖은 위험해 ...' 를 시전하다가 하루는 그 수고로움을 자처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래도 집은 따뜻하지만 계속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도 잦기에, 마음을 위해 몸을 수고시킨 셈.
동네를 떠돌아다녔다. 도서관도 잠시 들렀다가 새로운 길도 지나가보다가 지난번에 봤던 작은 가게들의 건재도 확인하고, 그저 그렇게 목적없는 걸음을 계속 딛었다. 이게 가을과 겨울 사이에만 나는 공기구나, 여긴 아직도 단풍이 다 안떨어졌네, 추워 ... 등을 생각하면서. 그러다 문득 쓰고 싶은 글들을 떠올렸고 하나하나 메모장에 간직한 채로 다시 따뜻한 대기 속으로 들어왔다.
집안에 갇혀있던 생각은 걸을 때면 쏙쏙 튀어나온다. 집에선 한 글자도 못 쓰던 사람이 겨우 이십 분 걷고 한아름 글감을 안고 오다니. 문득 글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나, 혹시 발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발을 디뎌서 그런 걸 얻어낼 수만 있다면 추위도 무시하고 그냥 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