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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Nov 13. 2022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는 방법

언젠가 자산이 될 거란 마음으로 책방을 전전한 지도 어엿 두어 달. 그 전에도 자주 찾곤 하던 책방이지만 제대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이곳저곳 거처를 옮겨 다녔다. 마포의 여러 책방을 돌아다닐 기회도 가졌었고 북토크나 워크샵이라는 이름으로 알게 된 공간도 이젠 여럿 생겼다. 


경험이라는 단어의 무서움은 그렇게 내 취향을 찾아간다는 데에 있다는 모순 속에 피어난다. 기대했던 책방의 사소한 실망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 마음속 그 서점에 조그만 엑스 표시도 해보고 그러다가도 우연히 지나가 다시 들어가면 어김없이 느껴지는 따수함에 다시 그 책방을 리스트에 올려두기도 하는 일렬의 과정. 


얼마 전에는 친구 S가 서성이다가 들어가 보지 못했다던 서점을 찾았다. 실은 근처 책방 워크숍 시간을 기다리는 중간 시간을 비교적 유익하게 보내기 위한 이유였다. 앉아서 책이나 마저 읽다 오자는 펄럭이듯 가벼운 마음으로. 그렇게 슴슴하게 들어간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었다. 사장님을 비롯한 모든 이가 책을 읽는 진귀한 풍경. 테이블 한쪽에는 잔잔한 컨트리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노란 조명은 공간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다분히 내주었다. 하지만 그곳에 매력을 느낀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만드는 낮은 데시벨. 


언젠가부터 큰 소음이 스트레스로 유유히 전이되곤 했다. 작게는 옆 사람의 목소리부터 크게는 늦은 새벽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까지. 그 크기는 데시벨이 측정하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이 측정하는 것이기에 더 괴로웠다. 통용되는 시끄러움과 소음이 아닌 내 상황과 분위기가 토해내는 기준을 나 조차도 모를 때가 많기에. 같은 카페여도 어느 날은 기분 좋은 백색소음이다가도 어떤 날은 도저히 무언가를 할 수 조차 없는 소음이 되어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기도 한다.


나는 아직 이곳이 처음인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머물러있던 두 어시간은 꾸준히 침묵이 유지되고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커피를 고르는 사람도, 심지어 책을 추천하고 단골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장님 조차도 그 암묵적인 데시벨을 지켰다. 나는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사려를 대각선 테이블에 앉아있던 앳된 두 사람에게서 느꼈다.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조차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그 배려가 이 공간 자체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안에 있는 한 무엇이든 할 수 있겠구나. 그것이 글을 쓰는 것이든, 흘러나오는 생각을 기록하고 그저 멍 때리는 것이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책방을 나서기 전 다시 매대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려워 보여 괜히 더 읽고 싶어진 책을 한 권 들고 사장님께 계산을 부탁드렸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는데도 사장님의 톤은 나를 처음 맞이한 그때와 똑같이 작고 부드러웠다. 어쩌면 사장님의 데시벨이 이 책방의 분위기를 같은 결로 물들게 한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서로를 기분 좋게 하는 언어를 사랑하고 동경한다. 그 작은 언어의 세계가 온화와 사려로 얼마나 깊고 넓어질 수 있는지는 따뜻함으로만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서로에게 기분 좋은 단어들을 나열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상대방의 길을 생각한다. 그는 과연 어떤 것들을 생각하며 오늘을 퇴근하고 있을까. 내가 그렇듯 그도 내가 건넨 언어에 한 줌의 기쁨을 얻어가고 있을까. 그게 오늘의 뿌듯과 감사일 수도 있을까.라고 혼자 상상하며.


책방의 하루 일과를 거의 마친 그에게 책을 내밀며 말을 건넸다.

“좋은 공간에 머물다 가서 너무 기뻤어요. 오랫동안 있어주세요.”

그건 내 진심이었다. 계속 이곳이 남아있길 바랐다. 처음 와본 공간에 이런 희망을 바란다는 것, 너무 지나친 희망일지 몰라도 마음은 마음일 뿐이고 진심은 한 마디로 진심일 뿐이다. 

“감사합니다.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자주 놀러 오세요!” 수줍은 미소와 정겨운 말이 돌아왔다. 




이틀도 안 돼서 다시 책방을 찾았다. 아득이도 먼 시간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오늘도 남은 자리는 겨우 하나였지만 안에 모인 사람들의 소음은 그때와 동일했다. 고요에 입장한 기분. 나는 이 고요가 오늘도 좋았다. 


사장님께 조심스레 “저 며칠 전에..” 했더니 “기억하고 있어요! 망하지 않게 도와주러 다시 오셨군요, 감사해요.” 라며 단숨에 흘러온 대답. 사랑하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수많은 지나쳐온 사람들 중 나라는 한 인간을 기억해준다는 것. 그 감격에 마음을 두고 작은 목소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책방 주인과 손님으로써가 아닌 나와 그라는 두 인간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 작은 수다가 좋아서 언젠가 또 이곳에 와 속삭이듯 똑같은 말을 반복할 것 같다. 저 얼마 전에 왔었는데 또 왔어요! 하고. 아마 이곳을 떠나는 밤에도 나는 이 자그마한 서점의 안녕을 바라겠지.


우리는 사라진 많은 것들을 쉽게 아쉬워한다. 진작 가볼걸, 여기 진짜 추억이었는데… 지금 누리고 있는 걸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것들. 지나친 것, 결국 한 번도 누려본 적 없는 것에 내 것이었던 양 추억이라 말하고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이틀 전과 오늘 이 작은 책방을 오고 가며 느낀 건 사랑하는 공간을 지켜내는 방법은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뭐라도 소비하고 그 대가로 나의 것을 생산해 내는 거라는 것.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따뜻한 언어처럼 기쁜 순환을 만들어내는 일에 뛰어드는 것이 이 세계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안이자 희망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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