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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Nov 04. 2022

당연하게 빚져왔던 모든 것들

살이 슬슬 보드라움보다 까슬함에 더 가까워질 때마다 엄마와 목욕탕에 가곤 했다. 엄마가 혼자 때를 미는 동안 나는 보통 뜨뜻 미지근한 이벤트탕(아직도 왜 탕 이름에 '이벤트'를 붙이는지는 잘 모르겠다.)에서 개헤엄에 가까운 수영을 하며 놀았고,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는 엄마의 신호에 몇 번은 일부러 무시하다가 끌려가듯 샤워기 앞으로 향했다. 사포같이 아픈 이 때밀이를 왜 온몸에 문대는 걸까 를 생각하며 엄살이란 엄살은 다 부려보았던 어린 나와 반대로 내가 당신의 등을 슥슥 밀어줄 땐 더 세게 밀어주길 바라는 엄마를 바라보며 이런 걸 참아내는 게 어른이구나, 를 느꼈던 목욕탕의 옛 풍경.


오늘 그런 옛날이 문득 떠올랐던 건 내가 처음으로 엄마를 직접 씻겨주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퇴근하고 내려오는 지하철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엄마의 복숭아뼈가 일부 떨어져 나갔고, 지금은 깁스와 목발의 몸으로 불편의 끝을 경험하고 있다. 덕분에 집안일은 나와 아빠가 전부 분담하게 되었고, 엄마의 일과 가사노동의 무게가 얼마나 중했는지를 실감하는 중이다.


그러다 며칠 전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가, 한쪽 다리를 가누지 못해서 샤워를 하다 뒤로 휘청 넘어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머릿속은 삐이 - 소리만 남은 평행의 선으로 가득해졌다. 만약 그날 엄마가 중심을 잡지 못했더라면. 엄마가 손으로 바닥을 짚거나 머리를 막을 새가 없었더라면. 부정적인 생각이라면 끝도 없이 파낼 수 있는 본인이기에 내색은 안 했지만 안에서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나는 내 일에 바빠 엄마가 할 수 없는 일만 대신 담당했을 뿐 내 삶에 엄마를 위한 큰 변화는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쉽사리 마음이 무거워졌다.


친한 동생과의 기쁜 만남을 마치고 돌아와 이제 막 자리에 앉아서 이것저것 글을 정리하려나 싶을 때쯤 멀리서 엄마의 낮은 의자 좀 가져와달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 맞다, 엄마 지난번에 넘어질 뻔했다고 그랬지. 지금 막 꽤 괜찮은 글감이 생각났던 타이밍에 하필. 그렇게 그 글감은 홀홀 머릿속을 떠났지만 그게 가족의 안전보다 중요할런지. 결국 의자를 가져다주려던 나는 엄마를 직접 씻겨주고 닿지 않는 등까지 밀어주는 꽤 멋진 효녀가 되었다. 머리까지 말려주었으니, 생각보다 더 괜찮은 딸일지도.


여전히 젊어 보이고 젊게 사는 엄마에게 나이 듦을 체감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아직도 나보다 씩씩하고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한쪽 발을 가누지 못해 내 팔과 다리에 몸을 맡기는 엄마를 보면서 언젠가는 내가 엄마보다 더 강해지는 때가 오리라는 어쩌면 당연한 진리를 이해했고, 엄마의 등을 벅벅 밀어주며 내 마음도 같이 벅벅 시큰거리게 긁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때밀이를 당하던 어린아이에서 엄마의 몸을 밀어주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커 간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점점 작아지는 것이기도 하는 것임을 엄마의 씻겨져 가는 몸과 말라가는 머리카락에서 느꼈다.


당연하게 빚져왔던 내리사랑의 채무를 이제야 아주 조금씩 갚아가는 것 같다. 아마 영원히 갚아도 빚은 남아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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