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적기까지 참 오래고 고된 시간이 걸렸다. 4일간의 수백 가지의 감정을 한 문단이나 글로 서술하기엔 그 깊이가 너무 깊고 방대했다. 어떤 날은 분개했고, 어떤 날은 절망했으며, 어떤 날은 자책했고, 또 어떤 날은 오로지 슬퍼했으니. 하지만 난 결국 써야만 하고, 그래야 좋은 짐들만 남겨두고 살아갈 수 있다.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큰 애도다.
나는 직접 현장에 있진 않았지만, 수많은 광경을 목격했다.
누군가는 휩쓸렸고, 누군가는 깔렸다. 누군가는 살리려 했고, 누군가는 그 와중에 즐거워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또 누군가는 조롱했다. 몸으로,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들이대는 휴대폰으로, 죽은 이들은 또 한 번 죽었다. 왜 그들은 두 번이나 죽어야만 했을까. 어떤 죄가 안타까운 죽음에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할 만큼 무겁다고 생각하는 걸까. 수많은 절규를 본 지난 며칠은 내게도 죽을 만큼 고된 밤이었다. 수도 없는 의문을 품고 역정을 내보지만 아무것도 이 일을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무력을 얻었다.
살려달라고 외치지만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시끄러운 음악 사이에서 가쁜 숨을 내쉬어야 했던 수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이런 죽음은 삼풍백화점이 끝이길 바랐고, 성수대교가 끝이길 바랐고, 세월호가 끝이길 바랐지만 앞으로는 이태원이 끝이길 바라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직도 누가 심장을 뚫어뻥으로 뽑아가는 것 마냥 가슴이 저릿하며 내려앉는다.
우리가 붙잡아야 했던, 그러나 결국 놓친 떠나간 수많은 조각들을 떠올린다. 완전함을 잃은 남은 조각들은 이제 무얼 해야 할까. 그 답을 찾지 못해 오늘도 빈자리를 자꾸만 서성인다.
합동 분향소 앞에서 글을 쓰고 있다. 더 행복했어야 하는 꽃들이 분분한 낙화가 되어 떨어졌다.
나는 계속 울었다. 꺽꺽하고 쓴 날숨과 눈물만 뱉어냈다.
떠나야 했던,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살 수 없었던 사람들. 나는 그 인생이 너무 가혹해 번번이 울 수밖에 없었다. 헌화대 앞에서도, 헌화 중에도, 기도를 하면서도, 광장에 나와 앉아있을 때도 나는 계속 울었다.
세월호가 겹쳐 보였다. 잔혹했던 날들이 자꾸만 포개졌다.
눈을 들면 분향소가 보이고 나는 그 분향소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나는 마음속으로 같은 과정을 수십 번씩 거치고 거쳤다. 마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찾아가듯, 수도 없이 그 일을 반복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는 촘촘해지면서도 아득해지는 것이었다.
광장에 앉아 이따금 분향소를 바라보며 한 분도 빠짐없이 다 인사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계속 기억할 테니 잊혀질까 걱정하는 건 더 하지 마시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202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