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라이프>는 움직이지 않는 소재를 그리는 '정물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멈춘 삶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삶을 말하기도 한다.
주인공 존 메이는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장례를 치러주는 구청 공무원이다. 그의 주 업무는 유품을 단서 삼아 아무도 오지 않는 장례식을 준비하고 추도문을 작성하는 일이다. 어느 날 아파트 맞은편에서 살던 '빌리 스토크'가 죽은 채 발견된다. 같은 날 청으로부터 일 처리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통보받는다. 존은 자신의 마지막 의뢰인인 '빌리 스토크'를 위해, 처음으로 사무실에서 벗어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의 삶을 돌아본다. 빌리 스토크는 비록 알코올중독자로 생을 마감했지만, 사원들의 휴식 시간 보장을 위해 회사와 싸웠으며, 때론 사랑에 빠지기도 했고, 자선기금 모금을 위해 무모한 도전을 했던 사람이었다. 모든 것이 멈춘 죽음 이후, 존에 의해 빌리의 다채로웠던 삶은 다시 시작된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2,543명이었던 무연고자가 2023년에는 5,324명으로 두 배이상 늘었다고 한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2023년 사망한 무연고자 5,324명 중 4,043명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피하는 경우였다. (서울경제, 르포, 2024.06.02.)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죽음 이후가 아니라, 훨씬 전에 버림받은 사람이다. 그들은 고독사 이전에 쓸쓸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존 메이는 그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일 처리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 직장 상사는 존에게 말한다.
"어차피 장례식이란 건 산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그러니 아무도 없으면 신경 쓸 사람도 없죠. 사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게 낫잖아요. 장례식도, 슬픔도, 눈물도 없는 게."
죽음의 쓸모없음과 장례의 비효율성 앞에 모욕을 당해도 죽은 이는 말이 없다. 존은 죽은 사람들의 유품을 살피며, 그들의 삶을 짜 맞춰간다. 존은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잊혀진 존재들에게 유일하게 애정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억 속에서 고독사한 사람들은 다시 살아간다.
삶이 끝나는 곳에 죽음이 있다. 이 둘은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만큼은 삶과 죽음이 함께 있어도 모순이 아니다. 죽은 이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신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죽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구원하는 길은 기억밖에 없다. 기억함으로써 살아가는 이는 스스로를 구원하고 나아가 죽은 이를 보살필 수 있다.
존의 검소한 식사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과일이 있다. 바로 배다. 중세부터 르네상스 화가들에게까지 정물화의 소재였던 배는 구원의 상징이었다. 그는 자신의 구원뿐만 아니라 고독사한 이들마저 구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