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틈새 Apr 20. 2024

1. 셀린 송, <패스트 라이브즈>

-연연하다가 마침내 연해지는 마음

혼자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옆 사람의 숨소리가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거나, 맘 놓고 웃거나 울고 싶을 때, 함께 보기 부끄러운 영화 거나, 영화와 별 상관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때다. 보다 보면 '혼자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기억에 오랫동안 남은 영화는 대부분 혼자 본 영화였다.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인연이란 말에는 오랜 시간과 찰나의 우연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래서일까. 인연이란 무게에 눌려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곤 하지만, 계절의 변화만큼 삶은 빠르게 변한다. 그대로 있고 싶은 건 나 자신뿐이다. 하지만 나도 이미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 삶이라는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아닐까.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첫 번째 발을 담근 물은 그 순간 이미 흘러갔다. 그래서 두 번째 발을 담그는 물은 첫 번째 담근 바로 그 강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발을 담근 나와 두 번째 발을 담그는 나는 동일한 나도 아니다. 지나간 인연을 그려보는 시도는 마치 오래 들어서 늘어난 카세트테이프와도 같다. 다시 듣고 싶다면 되돌려 감기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 사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늘어난 테이프를 버리지 못하고 오래된 종이상자에 종종 보관해 놓는 이유는 뭘까.



지나가버린 인연(연인)을 떠올리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질문을 약간 바꿔, 우리는 왜 실패할 걸 알면서도 그러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걸까


<패스트 라이브즈>의 나영은 인연이란 무게를 잘 견뎌낸다. 잘 견딘다는 말은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내버려 둔다는 뜻이다. 가볍게 내버려 두는 이유가 인연의 회귀 따위를 믿어서가 아니다. 과거의 시간을 붙잡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것.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고, 미래를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기억하는 나영이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알아"


"근데 그 어린애는 존재했어, 너 앞에 앉아있진 않지만 없는 건 아니야. 20년 전에 난 그 애를 너와 함께 두고 온 거야"


인연이란 소중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어떠한 인(원인)이 있다고 해서 그 인에 의한 확정된 과(결과)가 항상 뒤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에 의한 과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섣부른 낙관이나, 근거 없는 비관을 할 필요가 없다. 연연하거나 의연하더라도 결국 우리는 일어난 일에 대해 인정하거나 체념할 수밖에 없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인정과 체념 사이에서 희미해진 삶을 닳아버린 마음 한 구석에 어떻게 저장할 것인가를 묻는 영화같다.


“마음이 어두운가? 그것은 너무 애쓰기 때문이라네. 가볍게 가게, 그저 일들이 일어나도록 가볍게 내버려 두고 그 일들에 가볍게 대처하는 것이지.-『섬』, 올더스 헉슬리”




<패스트 라이브즈> 메인 예고편: https://tv.kakao.com/v/444471218



※ 데미안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와 비교하며 보면 좋겠지만, 이곳 [홀로 보고 싶은 영화]에서 추천하지 않은 이유는 <라라랜드>라는 영화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혼자 보면 처량해질 것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