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틈새 Apr 23. 2024

2. 박찬욱, <헤어질 결심>

을 보고 글을 쓸 결심.

'홀로 보고 싶은 영화'라고 썼지만, 대부분의 영화를 혼자 봤다. 영화를 보고 그 여운을 함께 본 이와 나누는 모습은 부럽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빠져나왔지만, 나의 일부는 아직 극장 좌석에 앉아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서 아무 말 없이 기다려 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영화를 보자고 말하기 어렵다.


이해는 안갯속에서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그에게 걸어가는 것.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나뭇가지에 살갗이 쓸릴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에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이해도 갈 길을 잃고 안갯속을 헤매게 된다. 다가가야 어디에라도 닿을 수 있다.


남편이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반지를 뺀 모습을 보며 무서운 여자라고 말하는 후배 형사에게 해준은 말한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서래가 파도 같은지, 잉크처럼 느린 사람인지 해준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해준은 ‘서래 되기’를 시작하였다. 형사라는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다른 존재되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붕괴되고 있다. 이제 해준과 서래에게는 자신을 덮쳐버린 사랑을 이해하는 일만 남았다. 이해는 항상 직면한 현실보다 늦게 온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논리적인 사고와 철저한 준비성, 투철한 사명 의식으로 무장한 탓에 거센 파도에도 꿈적하지 않는 산을 닮은 형사 해준과 안개 때문에 뚜렷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같은 서래의 이야기다.


해준과 서래의 만남은 그들 삶의 방향을 틀어놓는다. 용의자로 만난 서래가 해준에게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형사인 해준은 자신이 피의자가 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서래 또한 해준을 만날 방법을 고민한다. 남편을 죽였다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해준을 만나기 위해 살인까지 하는 서래는 망설임이 없다.  오히려 피 냄새를 싫어하는 형사 해준을 위해 시신의 피를 씻기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서래는 자신이 보았던 사극

<흰 꽃>의 대사를 조용히 중얼거렸을 것 같다.


"사랑은...... 그 외 다른 모든 것의 포기니라."


서래는 결국 해준에게 ‘미해결 사건’이 되기로 한다. 사랑의 포기가 아니라 사랑하니까 포기를 결심했다. 해결되지 않아 벽에서 떼지 못한 사진처럼 서래는 해준에게 남겨지고 싶다. 해준은 서래를 찾아 바다에 내려앉는 안갯속에서 헤맨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마침내 되기', ‘안갯속에서도 보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를 결심하는 영화가 아닐까.


※ 주위 사람들이 다 관람하고 영화에 대해서 한창 이야기할 무렵, "영화 너무 좋다"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더 보고 싶지 않은 오기 같은 게 생긴다. 그러다가 어느 분이 "그거 불륜 영화잖아" 라고 말했다. 어떤 영화라도 그렇게 단 한마디로 평가하는 단호함이 싫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셀린 송, <패스트 라이브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