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틈새 May 03. 2024

3.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진실과 사실

소설, 영화, 시, 그림책의 줄거리를 요약하다 보면, 터무니없이 시시해진다. 시시함을 벗어나기 위하여 미사여구나, 낯선 낱말을 사용하지만 결국은 당연한 말이 된다. 

삶의 허무를 이야기하거나,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관념적인 말을 쓰고 싶지 않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 대하여 쓰고 싶었지만, 쓰기 힘들었던 이유는 결국 당연한 말의 반복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빨간색 차 너무 예쁘다."

영화에 대한 친구의 감상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빨간색 차가 눈에 띄었지만, 예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게 뭘까라는 생각에 몰두한 까닭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계속 차를 타고 이동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시간에 따라 차창밖의 배경이 달라지며, 차 안 인물들의 마음이나 관계 또한 달라진다. 아마 친구는 그걸 느꼈던 것 같다. 나아지는 방향으로 흐르는 마음이 예뻐 보였을까.


바라보고 마주하기

어떻게 자신을 마주할 것인가? 

가후쿠는 딸의 죽음과 아내 오토의 외도 이후 갑작스러운 사망 앞에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기 두렵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도 내내 차 안에서 그녀가 녹음한 대사를 들으며 연습을 하지만 체호프의 대사를 입에 올리면 자신이 끌려 나올 것 같아 연기를 그만두고 연출가가 된다. 아내의 외도와 죽음은 사실이지만, 그 일에 대한 진실을 가후쿠는 외면한다. 자신도 깊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못 본 척했다.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일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녹음된 대본에서는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렇게 두렵진 않아. 가장 두려운 것은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이다."이란 말이 나온다. 


아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내 오토는 성관계를 가지며 떠오르는 이야기로 각본을 쓴다. 그리고 그 대상은 가후쿠만이 아니었다. 오토의 각본을 연기한 남자배우 다카츠키는 그녀처럼 멋진 여성과 함께 20여 년을 산 가후쿠에게 질투가 난다며 말한다.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도 타인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건 무리죠.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고, 솔직하게 타협해 가는 것 아닐까요. 진실로 타인이 보고 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가후쿠는 그가 분별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차 안에서 대화하는 동안 어쩌면 그가 자신보다 오토를 더 잘 받아들이고 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후쿠의 전속드라이버인 미사키는 가후쿠에게 말한다.

"가후쿠씨는 오토 씨를, 오토 씨의 그 모든 걸 진짜로 받아들이는 게 어려운가요? 오토 씨에겐 수수께끼가 없었잖아요. 그냥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는 게 어려운가요. 가후쿠씨를 진정 사랑한 것도 다른 남자를 끝없이 갈망한 것도 어떤 거짓과 모순이 없는 것 같은데요. 이상한가요?"


실제로 일어난 일이 '사실'이라면 '진실'은 거짓 없는 사실을 의미한다. 거짓이 없는 오토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미사키의 말처럼 가후쿠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진실을 바라지만 사실만을 쫓는 건 삶의 모순이다. 


어머니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히로시마 연극제의 연출을 맡은 가후쿠의 전속드라이버가 된 미사키는 중학교 때부터 운전을 했다. 운전은 어머니가 가르쳤다. 그녀의 마중과 배웅을 위하여 매일 2시간을 운전해야 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차의 덜컹거림으로 차 안에서 깨기라도 하면 미사키를 때렸다. 하지만 운전을 가르쳐줄 때만큼은 상냥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사치'라는 다른 인격이 나왔다. 그녀는 어머니가 미사키를 심하게 때린 후 자주 나타났다. 자주 우는 사치를 미사키는 위로해 주며, 어머니에게 있는 마지막 아름다움이 응축돼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사치는 미사키를 따뜻하게 대해줬다. 산사태가 집을 덮치며 어머니와 함께 사치도 사라질 것을 알았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차를 타고 히로시마로 왔다.


가후쿠는 미사키에게 말한다. 

"내가 만약 당신 아버지였다면 어깨를 안고 말해주고 싶어. 네 탓이 아니야, 넌 잘못한 게 없어라고. 하지만 말 못 하겠어. 넌 엄마를 죽이고 난 아내를 죽였어"


자기 자신을 깊이 바라보는 일은 고통을 수반한다. 좀처럼 가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의 내가 진실한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 때란 마치 어린 사치가 늙은 어머니의 몸에 적응하지 못해, 몸보다 마음이 앞서, 자꾸 넘어지는 것과 같다. 


다른 배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가후쿠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배우들에게 모국어로 대본을 읽도록 한다. 한국 수어를 사용하는 배우도 있다. 감정을 배제한 채 반복해서 읽거나 보다 보면, 언어로 전달되는 뜻을 넘어 무언가를 배우들이 느끼고, 그것이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가후쿠는 믿었다. 다만 천천히 그리고 다들 들을 수 있게 더 확실하게 읽으면 된다. 




"바냐 아저씨, 우리 살아가도록 해요. 길고 긴 낮과 긴긴밤의 연속을 살아가는 거예요.

운명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마음의 평화가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 든 후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이 오면 얌전히 죽는 거예요.

그리고 저 세상에 가서 얘기해요. 우린 고통받았다고. 울었다고. 괴로웠다고요."

-영화 대사 중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를 계속 기억해. 어떤 형태로든. 그게 계속되지. 너와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살아가야 해. 괜찮아. 우린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영화 대사 중


영화 속 세상과 영화 밖 현실의 경계를 다시 스크린을 통해서 보게 해 주는 영화. 그러므로 영화의 위로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드라이브 마이 카>. 

서로가 상대의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이 없는 현실에서 내 옆에 가후쿠나 마사키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회피하고 싶어지는 나의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영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연작 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의 한 단편을 영화로 만듦.

매거진의 이전글 2. 박찬욱, <헤어질 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