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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May 26. 2024

4. 타인의 시선 앞에 내던져진 존재들,<추락의 해부>

- 영화의 줄거리 및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어떻게 추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해부,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부부관계의 해부라는 해석이 있지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타인 앞에 내던져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극단적인 사건을 접하기는 드문 일이나, 타인에 의해 타자화된 나를 일상에서 만나는 일은 누구나 경험한다.


유명작가 산드라는 남편 사뮤엘이 죽을 때 그 집에 같이 있었던 유일한 인물, 더구나 '아내'이기 때문에 용의자로 지목되어 법정에 선다. 시각 장애가 있는 아들 다니엘과 안내견 스눕이 최초로 사뮤엘의 죽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니엘은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어 하며, 산드라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노력한다.


애도의 대상인 죽음은 분석을 위한 실험체가 되었다. 사뮤엘이 삼층 창문에서 떨어지며 창고 지붕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졌다면 창고 벽면에 튄 핏자국을 설명할 수 없다. 그 핏자국을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은 삼층에서 누군가가 사뮤엘의 머리를 무거운 둔기로 때렸다는 가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아내 산드라와 그녀의 변호사 뱅상은 남편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서 진술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뮤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죽음에 대한 슬픔 때문에 이미 '우는 것이 지겨울 정도로' 책임을 느끼고 있다. 기억의 부정확성과 왜곡으로 인한 진술의 차이, 그리고 사고 전날 산드라와 사뮤엘의 다툼이 녹음된 USB가 발견되면서 산드라는 유력한 용의자로 법정에 출석하게 된다.

재판의 목적은 상처의 극복이 아닌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지만, 공평무사함이라는 말이야말로 때로는 개인을 철저하게 타자화시키겠다는 발언 같다.


녹음된 USB에 대하여 산드라는 그것이 반박 못할 증거 같지만 현실을 왜곡한 것이어서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변호사는 무엇이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는 이제 남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한다며 산드라에게 충고한다. 법정에서 녹취록이 제공되고, 녹음된 음성이 흘러나오자 배심원들은 '남의 시선'으로 그 상황을 떠올린다.


남편 사뮤엘의 담당 정신과의사는 산드라가 남편을 무시하는 행동을 보였고, 사뮤엘에게 가장 중요한 글쓰기를 포기하게 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다. 남편의 글쓰기를 응원하지만, 한편으론 그 성공을 견딜 수 없어하는 이중적인 마음이 산드라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아들이 시력을 잃어버린 사고에 대한 물질적, 심리적 부담을 모두 남편이 짊어지게 했다고도 말한다. 산드라는 의사의 말이 전체 상황 중 극히 일부라고 말한다. 남편이 상담 받으며 했던 이야기는 부부사이가 나빴을 때의 일이며, 그것을 부부관계의 전부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배심원들에게 녹음된 USB의 음성만이 중요했던 것처럼, 의사에게는 사뮤엘의 상담 내용만이 중요했다.


타자의 시선은 곧잘 소설 속의 허구를 마치 진실로 받아들이는 듯한 오류를 범한다. 왜냐하면 개연성을 위하여 작가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그대로 표현했을 것이라 믿게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증인으로 나온 아들 다니엘은 진실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모든 이들이 가정과 개연성에 집착할 때 다니엘만이 진실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다니엘의 눈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는 당연한 말이지만 타인의 시선을 마주 보지 않을 때 달성되기도 한다. 다니엘은 법정에서 어머니의 결백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였는지 판단할 정보가 부족하다면 '왜' 죽였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 안에서 나눈 아버지와의 대화를 판사에게 들려준다. '스눕도 피곤할 때가 있다'라고 아버지는 다니엘에게 말한다. 사뮤엘은 스눕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다니엘이 뭘 원하는지 이해해야 하고, 움직임을 예상하고, 위험 요소도 파악해야 하며, 필요한 것도 짐작해야 했을 것이라며, 남들만 챙기다가 못 견디겠다 싶을 때가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떠나야 하면 떠날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인생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결국엔 스눕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고 설명한다.



타인에 의한 소외(타자화)는 자기만의 삶을 살기 어렵게 만든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인식이나 시선은 쉽게 낙인으로 남아 그렇게 살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들고, 삶의 중요한 것들로부터 끊어진 채로 내버려 둬 '그것'의 형태로 재현하게 만든다. <추락의 해부>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해부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닿는 그것들의 실체를 들추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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