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 선행 없이 국제학교 입학한 이야기
교육에 정답이 있을까요?
각 가정의 교육 철학과 아이의 성향이 모두 다를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육에는 정해진 하나의 답보다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군지의 교육 방식이 정답인 것처럼 그곳의 학습 분위기를 따라가려 노력합니다.
처음에는 '나는 안 그럴 거예요' 하다가도, 막상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불안해지고 흔들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고학년이 되자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고, 그때마다 중심을 잡기 위해 애썼던 경험이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중심에 두었던 교육 원칙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충실한 공교육, 그리고 독서와 경험”이었습니다. 이것에 충실히 집중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가 잘 따라와 주었고, 이는 국제학교 입학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발을 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희는 선행 학습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었습니다. 공교육 커리큘럼은 아이들의 인지 발달을 고려하여 체계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6학년이 되면 한 시간 만에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4학년이 두세 배의 시간을 들여 배우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제때 하면 될 것을 미리 끌어다 하는 건 시간 낭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래서 저희는 선행 대신, 책을 한 줄 더 읽고, 심화 문제를 한두 개 풀어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5학년 2학기 무렵, 수학이 제법 어려워져서 학원을 알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또래 아이들이 이미 중등 과정을 하고 있어서 저희 아이가 들어갈 만한 반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난감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결국 6학년이 되도록 수학 학원은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학원을 전혀 안 다닌 것은 아닙니다. 영어, 독서논술, 도장 등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학원들은 꾸준히 다녔습니다. 이 학원들이 아이에게 선행 학습보다 더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어는 전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영어를 잘 못하는 제가 여행 중 겪었던 온갖 불편함이 이 결정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제대로 놀기 위해서라도 영어는 필요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첫 영어 학원은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 대형 프랜차이즈 학원이었습니다. 짧지 않은 시험 시간을 이 어린 친구들이 소화해 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함께 시험을 치른 아이들 중 초2인 저희 아이 나이가 가장 많았는데, 그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숙제는 많았지만, 유쾌하고 멋진 선생님 덕분에 아이가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3학년 무렵 이사 후, 전에 다니던 같은 브랜드 학원에 등록했지만 얼마 못가 그만뒀습니다. 학원 브랜드의 유명세 만큼 원생 수가 많았습니다. 학생들로 빈 틈 없이 채워진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는 늘 울상을 지었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엄마, 영어 학원인데 영어로 말을 안 해. 배운 걸 말해보고 싶어.”라는 아이의 말이었습니다. 충격이 컸습니다. 15명이 넘는 반에서 45분 수업이라면, 아이가 입을 열 기회조차 적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학원을 바꿨습니다. 정원이 적고 원어민 회화 수업이 포함된 동네 영어 학원으로 옮겼습니다. 한 반 정원이 8명이었는데 실제로는 6명을 넘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후 본격적인 말하기를 위해 화상 영어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이 수업을 공부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 생각했습니다. 몇 달 안에 유창해지기를 기대하기보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꾸준히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재치있는 선생님이 아이의 관심사를 빠르게 파악하여 대화를 잘 이끌어 주셨습니다. 어느 날은 수업 중 리코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봤더니,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곡을 선생님께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라도 더 해야 할 수업 시간에 리코더를?’ 싶었지만, 아이의 일상이 수업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오히려 더 풍부한 대화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이 화상 영어는 3년 동안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국제학교 입학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가 '엄마, 아빠'를 말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잠자리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거창한 뜻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음치 엄마가 자장가 대신 선택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독서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후로는 글밥이 많아져 힘들어서 오디오북으로 대체했습니다. (아이가 혼자 있고 싶다고 할 때까지 읽어주지 못한 것이 아직도 후회됩니다.)
잠자리 독서의 중요성을 경험을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포근한 이불 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은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고, 엄마와의 유대감을 키워주었습니다. 눈을 감고 들은 이야기는 머릿속에 이미지로 떠올랐고, 이는 창의력과 상상력 발달로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책은 늘 아이 수준보다 살짝 어려운 것을 골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휘력과 이해력은 자연스레 따라왔고,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는 태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도 함께 자랐다고 느껴집니다.
2학년부터는 어린이 신문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한 기사, 5분이면 충분했습니다. 문학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면, 시사 뉴스는 현실을 이해하게 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영역이 모두 필요했던 것이지요.
아이 3학년 무렵, 이사를 하면서 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었습니다. 취미로 공부했던 독서토론과 독서 교육 과정을 바탕으로 교습소를 열었고, 아이는 저의 첫 제자가 되었습니다. 반강제로 시작한 독서논술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국제학교 입학시험의 에세이 작성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험 언어는 영어였지만, 글쓰기 구조와 내용은 지금까지 해 온 논술 수업이 바탕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체격이 왜소한 편인 아이가 몸을 보호하기 위해 실전 무술이 필요했어요. ‘실전은 역시 주짓수’라는 말을 듣고 종합 무술 도장을 찾았습니다.
이 도장에는 특공무술, 주짓수, 마샬아츠 등 다양한 수업이 있어, 체력 단련과 호신술을 함께 익힐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곳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운동뿐 아니라 사회성도 함께 키웠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피구, 농구 같은 게임도 하고, 파자마 파티나 캠프도 열렸습니다. 코로나 이후 학교 활동이 많이 줄어든 시기, 이런 프로그램은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년쯤 다니자 시범 단도 하고, 도복 태도 제법 그럴싸해졌습니다. 아빠에게 발차기를 가르쳐 주겠다며 아이가 시범을 보였는데, 한 방 맞은 아빠가 “진짜 아프다“며 저에게도 한 방 권하더군요. ‘에이~ 저 가냘픈 다리가 뭘~’ 하며 허벅지를 들이댔다가 뼛속까지 전해지는 찌릿함을 맛봤습니다. 눈물이 찔끔 났지만,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았다는 작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어디서든 얻어 터지지는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이의 교육은 아직 한창 진행 중이기에 이번 경험을 ‘성공’이라 단정 짓기는 이릅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수학 선행이나 주요 과목 위주의 학원 수업 대신, 저희는 아이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배움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국제학교 입학이라는 아이가 바라던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희는 아이가 영어 유치원 출신이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그래서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아이보다 저희가 더 얼떨떨하고 기뻤습니다. 이번 경험이 아이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더 넓게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희의 이 경험이 특별한 교육 노하우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정해진 길'만이 전부가 아님을 확인한 작은 사례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부디 저희의 작은 경험이 자신만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보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