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 일본 브랜드가 유독 많은 이유는?

태국의 경제와 일본의 자본

by 나름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음식!

아무리 미식의 나라 '태국'이라지만 한식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 똠양꿍도 쏨땀도 영혼을 채워줄 수는 없다. 그렇다 보니 집에서 요리를 하는 일은 한국에서보다 많아졌다.


한식 식재료를 찾으러 대형 마트 ‘고홀세일’로 향했다. 수입 제품이 진열된 곳에서 한국에서 온 간장, 김, 미역 등을 담다가 일본 식재료 코너까지 발을 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일본 간장이 한국 간장보다 훨씬 저렴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왜 유독 일본 브랜드가 많을까?


사실 태국에서의 하루는 일본 브랜드로 시작해서 일본 브랜드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븐일레븐에서 메이지(Meiji) 우유를 마시고, 도요타(Toyota)를 타고 이동해 저녁에는 쇼핑몰 내 카츠야(Katsuya)에서 돈카츠를 먹는다. 거리 곳곳에는 일본풍 카페와 정원이 즐비하고, 편의점 매대에는 일본 브랜드의 과자와 음료가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잡고 있다.


태국 곳곳에 스며든 이 진한 일본의 향취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문득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주도하며 아시아 전역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일본이 아니던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앙금이 여전하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일본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은 나라가 허다하다.


하지만 태국은 예외다.

일본 문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것을 넘어, 마치 오래된 단짝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일전 응원에 뜨거운 피를 쏟아내던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 무서울 정도의 친밀함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


이러한 친밀함의 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제국주의가 몰아치던 2차 세계대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시아 대다수 국가가 식민 지배의 고통을 겪을 때, 태국은 일본과 '동맹'이라는 기묘한 선택을 했다. 표면적으로는 일본군에 길을 내어준 굴욕적인 협력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태국은 주권을 지켜냈고 일본 역시 태국을 식민지가 아닌 파트너로 대우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논리와 "살아남기 위한 실용주의"가 맞물린 결과였다. 전후에도 양국은 이 특수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과거사'라는 감정적 허들 없이 경제적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본격적인 경제 밀월 관계의 방점은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찍혔다. 당시 미국은 심각한 무역 적자의 원흉으로 일본을 지목하며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 일본으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하지만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상황에서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배짱은 없었다. 결국 일본은 안보적 생존과 '강한 엔화'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뒤섞인 채 '플라자 합의'에 서명하고 만다. 사실상 강대국의 뻔뻔한 룰 세팅에 국가의 경제 주권을 저당 잡힌 셈이었다.


이 합의의 결과는 즉각적이고 치명적이었다. 엔화 가치가 치솟자 일본 본토에서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도 해외 시장에서는 가격표가 두 배 가까이 뛰었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일본 기업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였다. 엔화 영향권 밖으로 생산 기지를 통째로 옮기는 것, 즉 '공장의 엑소더스(Exodus)'였다. 일본 내수 시장만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일본 열도를 떠나야만 했다.


그때 그들이 대안으로 점찍은 나라 중 하나가 바로 태국이었다. 자국 경제를 살리려는 강대국의 설계가 일본의 거대 자본과 기술을 태국으로 떠밀어낸 것이다. 태국은 이 거대한 자본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다. 일본은 태국에 공장을 세우는 조건으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술을 전수했으며, 태국은 그 대가로 일본 기업들에게 안정적인 생산 기반과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그 결과 태국의 도로는 일본차로 뒤덮였으며 산업 단지 곳곳에 일본의 DNA가 깊숙이 박히게 되었다


내가 마주친 풍경들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강대국들이 설계한 냉혹한 ‘힘의 논리’와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두 나라의 생존 전략이 빚어낸 정교한 결과물이었다. 한일전의 승패에 일희일비하며 감정의 파고를 겪어온 나에게, 태국이 보여주는 이 무서울 정도의 실용주의는 낯설고도 서늘한 깨달음을 준다.


국제 관계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그 흔한 격언은 태국의 일상 속에 박힌 일본의 흔적들을 통해 묵묵히 증명되고 있었다. 이들은 강대국의 뻔뻔함마저 기회로 바꿔내는 가장 영리한 생존법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상 곳곳에 스며든 일본의 로고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태국이 일본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워할 여유조차 없이 철저하게 '내일'을 선택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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