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 대신 태국인을 살린 작물은?

붉은 양귀비가 검은 원두가 되기까지

by 나름


나는 지독한 카페인 중독자다.

하루의 시작은 어김없이 카페라테와 함께하며, 모든 일의 마디마다 커피가 놓여 있다. 과거, 열 달의 임신 기간 중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입덧도, 몸의 무거움도 아닌 바로 '커피 금지령'이었다. 오죽하면 출산 직후 가장 먼저 찾은 음식이 갓 내린 카페라테였을까.

야근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마시기 시작했던 커피는, 어느덧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상이자 생존 필수품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이곳 치앙마이는 그야말로 황홀한 도시다. 한국 못지않은 엄청난 카페 밀도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바리스타 대회 수상자들이 직접 운영하는 수준 높은 로스터리들이 도시 곳곳에 포진해 있다. 큰 길가는 물론,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좁은 골목 어귀까지 개성 넘치는 카페 트럭들이 자리를 잡고 향긋한 원두 향을 내뿜는다. 발길 닿는 곳마다 커피의 축복이 내린다.


이곳에서는 굳이 스타벅스를 찾을 이유가 없다. 130바트(약 6,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50바트(약 2,300원)짜리 로컬 커피가 훨씬 깊고 풍부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공간의 미학은 또 어떤가. 서울이라면 새벽부터 오픈런을 해야 할 법한 감각적인 인테리어부터, 도심 한복판에 열대 우림을 통째로 옮겨놓은 듯한 숲속 카페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도대체 커피와 태국은 어떤 깊은 인연이 있는 걸까?


그 향긋한 풍경 이면에는 태국 북부 고산지대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이곳은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지였다. 산악 소수민족들은 생계를 위해 양귀비를 재배했고, 이는 마약 문제와 산림 파괴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낳았다. 이 흐름을 바꾼 것은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이 주도한 '로열 프로젝트'였다. 국왕은 직접 험준한 산등성이를 누비며 산민들에게 양귀비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커피 묘목을 심을 것을 독려했다.


국왕이 커피를 선택한 것은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다. 해발 1,000m가 넘는 북부의 서늘한 기후는 고급 아라비카 원두 재배에 최적이었고, 한 번 심으면 수십 년간 수확이 가능한 커피는 떠돌이 화전민들을 정착시킬 유인책이 되었다. 무엇보다 커피는 아편만큼이나 국제 시장에서 경제적 가치가 높으면서도, 생두 상태로 장기 보관과 운송이 용이해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생계를 꾸려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당시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 문제는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였기에, 태국 왕실의 아편 근절 선포는 국제적인 환영을 받았다. 이에 UN과 국제기구들은 막대한 기술 지원과 종자를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커피는 태국이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인정받으며 원조를 끌어내기 위한 강력한 외교적 카드가 되었다.


이러한 국가적 사명 아래 척박한 산비탈에 뿌리 내린 묘목들은 붉은 양귀비꽃 대신, 작고 소박한 하얀 커피 꽃을 피워냈다. 이제 도이창(Doi Chang), 도이뚱(Doi Tung) 같은 로컬 브랜드들은 세계 시장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으며 태국의 자부심이 되었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나는 이 검은 액체가 지워낸 아편 밭의 흔적을 떠올린다.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아편은 이제 검은 원두로 변해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한 땅 위에서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이 경이로운 변화 속에서, 나는 진한 커피 향 뒤에 숨은 시대의 묵직한 서사를 느낀다. 태국의 커피 향은 이제 단순한 풍미를 넘어, 고통의 역사를 지워낸 자리에 굳건히 뿌리 내린 삶의 의지처럼 다가온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