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떻게 태국의 부(富)를 거머쥐었나
아이가 학교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장소는 무려 워터파크!
“여기 애들 스케일 크네~”
생각하며 입장료와 넉넉한 간식비를 챙겨 집을 나섰다.
파티가 끝날 즘, 아이를 데리러 가서 초대해 준 어머니를 만났다. “하이~”라고 인사하면서도 속으로 ‘한국분인가?’ 싶었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익숙한, 전형적인 동아시아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혹시 친구 어머니가 한국분이니?”
“아니, 태국분이셔.”라고 답하며 챙겨준 돈을 그대로 내놓았다.
한국인을 닮은 그 어머니가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입장료와 식비뿐만 아니라 간식비까지 모두 결제했다는 것이다.
문득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세련된 카페 주인이나 유명 식당 사장님, 은행 직원들 대부분은 그 어머니처럼 피부가 밝고 얼굴 윤곽이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반면 무반 단지의 경비 아저씨, 그랩 배달 기사, 마사지사들은 구릿빛 피부에 선이 굵은 진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개인의 차이라기엔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의 외형적 경계가 너무나 뚜렷해 보였다.
도대체 이 '하얀 피부'의 태국인들은 누구일까?
자료를 찾아보니 그들은 18세기에서 20세기 사이, 중국 남부에서 바다를 건너온 '중국계 태국인'들이었다.
맨손으로 건너온 그들이 이토록 단단한 성을 쌓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부지런해서만은 아니었다.
당시 농경과 부역에 매여 있던 원주민들을 대신해, 왕실은 상업에 밝은 중국인들을 '경제 대리인'으로 활용했다. 왕실은 체면을 지키며 금고를 채울 세금 징수원이 필요했고, 중국인들은 왕실이라는 뒷배를 얻어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했다. 태국식 성씨를 받아들이며 ‘태국인’이 되기로 한 결단은, 그들을 사회 깊숙이 파고들게 만드는 촉매가 되었다.
이 전략적 공생의 결과는 오늘날 태국 경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태국 길거리에서 매일 보는 세븐일레븐과 통신사 True, 대형 마트 Makro를 운영하는 CP 그룹은 중국 광둥성에서 건너온 형제가 세운 기업이다. 방콕의 랜드마크인 센트럴 월드를 소유한 센트럴 그룹, 세계적인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과 국민 맥주 창(Chang) 역시 중국계 가문이 창업주다.
이처럼 태국 10대 재벌 대부분이 중국계라는 사실은, 우리가 태국에서 먹고 마시고 쓰는 거의 모든 것이 이들의 손을 거친다는 뜻이다. 워터파크에서 만난 그 어머니의 여유로운 미소는 대를 이어 축적된 자본이 만든, 넘볼 수 없는 성벽 안의 평온함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성벽은 누군가에게는 오를 수 없는 절벽이기도 하다. 피부색이 곧 계급의 표식이 되는 사회에서, 그 성벽 밖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안을 바라볼까. 계층 간의 사다리가 없는 세상에서 그들이 보여준 낙천성은 어쩌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성벽을 쌓은 사람들과, 그 높은 성벽 밖에서 주어진 삶을 묵묵히 일구는 사람들. 이들 모두가 뒤섞여 만들어낸 태국은 내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비정한 역사의 산물이었다. 내가 알던 '태국인'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이 거대한 생존의 풍경을 마주하고 나서야, 나의 시선이 얼마나 좁은 창에 갇혀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이 학교에서 그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제는 당황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익숙한 얼굴 너머에 담긴 치열했던 역사를 떠올리며, 조금 더 넓어진 시선으로 인사를 건네보려 한다.
"컵쿤 카(고마워요), 덕분에 아주 즐거웠어요."
그 한마디에 담길 나의 인사는 이전보다 조금 더 무거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