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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과 거실의 진폭

by 몽쉐르

저녁, 오늘 하루의 심박변이 그래프를 들여다보며 나를 되짚었다.

가장 솔직한 기록은 일기장이 아니라, 내 심장일지도 모른다.


아침은 상쾌했다. 아이들을 평소처럼 등교시켰다.

오늘은 수학여행, 수련회, 체험학습으로 대부분의 학생과 교사가 자리를 비운 날이라 차가 더 잘 나갔다.

남아 있는 몇몇 학생과 교사들만이 하루를 시작했다.

이때 내 심박변이는 20밀리초.


“평균 정도는 되네.” 나에게는 꽤 괜찮은 수치다. 하지만 봉긋 솟은 지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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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에서 2시 사이, 36밀리초.

그 시간은 잔류 학생들을 지도하던 시간이었다.

남은 학생들은 도서실에 모여 정해진 일과를 따라야 했다.

돌아가며 교사들이 지도하는데 오늘은 내 차례였다.

아이들은 독서를 하거나 영단어를 쓴다.

오늘의 시간을 지도하고, 내일 있을 자본주의 금융 교육을 계획하고 있었다.

늘 만나던 특수학급 학생이 아닌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라 설레였다.

오늘 학생들의 분위기와 수준을 파악 해 내일 수업의 깊이와 방식도 조율할 생각이었다.

시간 낭비가 아니라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이 내 심박변이 그래프에 36밀리초라는 곡선을 그려놓았다.

새로운 이들에게 무언가 전하고 싶다는 열정 그게 나에겐 에너지가 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 36밀리초에서 8까지 다이빙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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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예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언제 와?”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할머니 댁에 놀러 가 있을 시간인데

“아빠랑 보드게임 하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의구심을 내려 놓게 되었다.

집에 도착하자 예준이는 오늘 공부한 내용을 들고 내게 왔다.

초등학교 3학년인 예준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하루 계획한 공부를 스스로 하고 퇴근하면 그걸 함께 확인한다.

나는 ‘하루에 한 문제만 깊이 생각해도 된다’고 말해 왔고 그 원칙을 예준이는 잘 지켜왔다.

모든 문제를 암산으로 풀기에, 책엔 흔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풀어온 문제들을 보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려운 문제였고, 나도 해설지를 봐야 이해가 되는 문제가 는데 정답도 맞았다. 너무 매끄러웠다.

“혹시 답안지 보고 쓴 거야?”

예준이는 “내가 풀었어.” 목소리가 떨렸다.

다시 몇번 더 물었고, 결국 “응… 답 봤어.” 실토했다.

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화가 났다.

“예준아, 아빠가 말했잖아. 한 문제만 깊이 생각해서 풀면 된다고.

정답보다 네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아이의 실수에 실망한 게 아니다. 그럴 수 있는 나이다.

아내는 “그냥 답안지를 치워두지 그랬어?”라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아이를 믿고 싶었다.

정답보다 태도를 결과보다 성장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마음의 실망때문은 아니다. 남은 시간 나의 계획이 틀어지고, 흐름이 어긋났다는 스트레스를 심장은 예민하게 알아채고 숫자로 보여줬다.

하루의 감정이, 마음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내 심장 박동 사이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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