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눈을 가진 중년의 여자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 뒤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딸이 서 있었다.
대학을 휴학하고 어머니의 간병을 맡은 딸이었다.
병원에서는 그녀를 '효녀'라며 칭찬이 자자했다.
“엄마, 이번에는 이쪽에서 치료를 받을 거야.”
딸은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불편해 보일까 매번 신경을 곤두세웠다.
“어디 불편한 데 없어?”
치료가 시작되면 잠시 쉬어갈 법도 한데 딸은 병실로 뛰어가 이것저것 정리했다.
치료 과정을 어슬렁거리며 지켜보다가 저녁에는 병원에서 본 대로 어머니를 위해 직접 해주곤 했다.
간병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지만 가끔은 병원 한쪽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딸의 모습만이 그 지친 마음을 드러내곤 했다.
치료가 끝나면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리 엄마, 좋아지겠죠?”
나는 매번 호기롭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치료는 최신 기법이에요.”
최신 논문과 방법론을 들먹이며 당당하게 말하곤 했다.
딸의 눈에는 희망이 서려 있었다.
매일같이 치료가 끝나면 그녀는 또 묻곤 했다.
“오늘은 어땠나요?”
그러면 나는 또다시 똑같이 대답했다.
“오늘은 이런 방법을 시도했는데 떨림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딸을 불러 저녁에도 어머니에게 똑같이 해달라고 지도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 치료 시간 동안에는 분명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언제나 일시적이었다.
치료가 끝나면 곧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어느 날, 중년의 환자분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저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요?”
나는 늘 그래왔듯 희망을 주기 위해 말했다.
“그럼요 좋아지실 겁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의문이 자꾸만 내 안에 피어났다.
한 달, 두 달, 여섯 달이 지나도 딸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 엄마, 오늘 어땠나요? 좋아질까요?”
나는 언제나처럼 대답했다.
“네, 오늘도 발전이 있었습니다. 좋아질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분이 내게 아주 다른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저는 이제 장애인이 된 건가요?”
그 순간, 나는 그동안의 질문과는 다른 무게를 느꼈다.
항상 즉각적으로 대답하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분은 내가 무슨 대답을 하기를 바랐을까?
‘네, 그렇습니다. 이제는 일상생활을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려다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이대로 열심히 하시면 더 좋아질 거예요.”
그리고 1년 후 환자분은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가끔 그 모녀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는 이때부터 환자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은 달라진 게 없는데 나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만을 계속해서 주었으니까.
나 자신이 마치 낮은 초기 평가를 주고 조금씩 좋아지게 만들어 내 성과에 만족했던 것은 아닐까?
그들이 기대했던 변화는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치료사로서의 내 마음속에 퇴사의 씨앗이 심겼던 것이다.